[치매·중풍] 국내에선 허술한 제도 부족한 시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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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름·다운 쌍둥이 자매와 오빠 경원씨(왼쪽부터)가 중풍에 걸린 외할머니의 얼굴을 닦아주며 밝게 웃고 있다. 아름·다운 쌍둥이 자매는 5년 전부터 할머니를 보살펴 왔다.

한국에서 치매나 뇌졸중(중풍) 환자는 가족의 헌신적인 사랑이 없으면 사람답게 살기가 어렵다. 이들을 위한 시설이나 제도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치매나 중풍 환자가 생기면 환자를 보살피는 일은 고스란히 가족의 몫이다. 고통과 경제적인 부담을 감당하지 못하는 가족에게 외면당하는 환자도 적지 않다. 실제로 7월 시행되는 노인장기요양보험을 신청한 치매·중풍 노인 10명 중 2명이 홀로 살고 있다.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재활에 힘쓰는 치매·중풍 환자 가족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중풍 남편 위해 16년간 전국 곳곳 누벼”=울산에 사는 송경한(56)씨는 중풍과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 벌써 16년째다. 송씨는 1992년 10월 방에서 쓰러졌다. 방바닥에 침을 흘리고 있는 송씨를 아내 김태숙(52)씨가 발견해 병원으로 옮겼다. 하지만 때는 늦었다. 3일 만에 깨어난 송씨는 오른쪽 뇌혈관이 경색돼 말을 잃어버렸다. 후유증으로 송씨는 어린아이가 돼 버렸다. 병원에서 진단한 송씨의 정신 연령은 7세. 그가 쓰러질 당시 둘째 딸(3세)보다는 높았지만 첫째 딸(당시 8세)보다도 어린아이가 된 것이다.

아내 김씨는 처음에는 “우에 살아야 하노”라고 울부짖으며 여러 날을 지냈다. 김씨가 마음을 다잡은 것은 “사람(남편)은 살리고 봐야 된다”는 생각을 하고부터다. 그는 악착같이 돈을 벌었다. 결혼 전 경험을 살려 의류 수선집을 차렸다. 매달 60만원씩 나가는 남편의 약값과 아이 교육비를 혼자 감당하기 위해선 다른 수가 없었다.

김씨가 일을 마치고 녹초가 돼 집으로 돌아오면 집안은 늘 난장판이었다. 아이가 돼 버린 남편은 딸을 때리고 욕을 해댔다. 우뇌가 손상된 남편은 언어 능력이 떨어져 쉽고 간단한 욕만 반복했다. 아이들도 아빠의 거친 행동 때문에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김씨는 “아이들이 어렸기 때문에 아빠가 아픈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흔들릴 때가 많았다”고 말했다. 김씨는 아이들을 다독이며 남편의 재활에 온 힘을 쏟았다. 남편을 데리고 전국의 ‘용하다’는 병원은 다 찾아다녔다. 약도 꼬박꼬박 먹였다. 집 근처에 중풍 환자를 위한 물리치료소 같은 곳을 찾아봤지만 허사였다.

김씨는 “쉽게 갈 수 있는 물리치료소가 없어서 산을 오르내리며 재활 운동을 했다”고 말했다.

가족의 노력 앞에 송씨를 짖누른 병마도 힘을 잃기 시작했다. 김씨는 “남편이 1년에 한 번씩은 발작을 일으켜 ‘송장’(의식을 잃고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상태)이 돼서 병원에 실려 갔었다”며 “6년 전부터 이런 일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이제는 남편은 두 딸들을 때리지도 않는 ‘조용한 신사’가 됐다. 송씨는 아직 말을 제대로 못하지만 매일 산을 오르며 삶의 의지를 다지고 있다.

◇“할머니 목욕 날은 가족 단합대회”=남아름(19·대학생·서울 영등포동)·다운(19·대학생) 쌍둥이 자매네 가족은 매주 일요일 가족 단합대회를 연다. 단합대회는 중풍에 걸린 외할머니 김양순(77)씨를 목욕시키는 행사다. 오빠 경원(20·대학생)씨는 할머니를 바로 옆 화장실로 옮기고 아름·다운 자매는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고 기다린다. 그 사이 어머니 김경숙(53)씨는 일주일 동안 바닥에 깔렸던 이불을 걷어내고 청소를 한다.

아버지 남상천(50)씨는 “장모님 덕분에 가족의 구심점이 생기고 ‘가족이란 게 이런 거구나’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김 할머니는 5년 전 중풍으로 쓰러졌다. 왼쪽 뇌에 출혈이 생겨 오른쪽 근육을 쓸 수 없게 됐다. 쌍둥이 자매 부모는 당시 식당을 운영했다. 할머니를 돌보는 일은 자연스럽게 아이들 몫이 됐다. 아름·다운 자매는 그때나 지금이나 새벽 5시30분에 일어난다. 눈을 뜨자마자 제일 먼저 하는 일이 할머니 기저귀 확인이다.

어머니 김씨는 “(할머니 변을 보면) 애들이 냄새도 나고 비위도 상할 텐데 다 받아준다”고 말했다. 자매는 군말 없이 할머니 기저귀를 갈아 낀 뒤 아침상을 차리고 한 숟가락씩 음식을 할머니 입에 넣어 줬다. 다운양은 “할머니가 아침에 내 이름 불러주고 쓰다듬어 주기 때문에 편안하게 하루를 시작한다”고 말했다.

지난 주 할머니가 의식불명에 빠졌다. 동공이 풀리고 말해도 대답이 없었다. 5년 동안 서서히 진행된 중풍은 이제 왼쪽 손도 못 쓰게 만들었다. 그래도 쌍둥이 자매는 포기하지 않았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손을 주물러 드리고 말을 계속 걸었다. 며칠 후 기적같이 할머니의 의식이 다시 돌아왔다. 김씨는 “임종을 준비하고 있었다”며 “자식들이 어머니께 생명을 다시 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씨는 “현재 보건소에서 약과 기저귀를 무료로 받고 있다”며 “병원에서 재활치료를 받아야 하지만 엄두를 내지 못한다”고 말했다. 병원에 가려면 환자 이동 서비스를 이용해야 하는데 비용은 왕복 10만원에 달한다.

김씨는 “치매·중풍 환자를 위한 복지 서비스가 어떤 것이 있는지 알지 못한다”며 “이런 서비스에 대한 정보를 체계적으로 주는 곳이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 김창규·김은하·백일현·김진경·김민상·이진주 기자, 사진=변선구 기자, 편집=안충기·이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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