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중풍] 여보, 고맙소 미안하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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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에 걸린 당신에게

당신이 이 편지를 읽을 수 없고 이해하지도 못하는 걸 알고 있소.

하나님께서 나의 심정을 당신의 심령(心靈)에 전해 주실 것을 기원하면서 이 글을 쓰오.

당신과 결혼한 50년 전은 내가 경제적으로 가장 어려운 때였소.

당신은 온갖 고생을 하면서도 불평 없이 내조를 잘해 주었어.

1남 2녀를 낳아 잘 길러줘 내가 사회 생활하는 데 큰 힘이 돼 주었소.

요즘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도 새 날을 주셨으니 건강도 주셔서 당신을 잘 돌볼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한다오. 내가 오래 살아서 당신을 끝까지 돌보기를 소망하오.

무엇보다 가장 간절한 소망은 당신이 사는 날까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것이오.

만일 내가 먼저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떠나더라도 너무 염려 마시오.

당신을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요양원에 입소할 수 있도록 자식들에게 당부해 놨소.

이번 기회에 당신에게 용서를 구할 것이 있소. 그동안 당신이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고,

하루에도 5~6차례 몸을 더럽히고 옷을 버릴 때나, 감기·몸살로 열이 많아 고생하거나,

항문 주변에 습진이 심해서 몹시 고생할 때는

차라리 하나님께서 당신의 삶을 마감해 주시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여러 차례 있었소.

정말 미안하게 생각하오. 용서해 주시오.

당신은 과거의 기억은 물론 조금 전에 있었던 일조차 기억하지 못한 지가 제법 됐소.

이제는 말도 잊어버렸소. 복받은 인생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

그래도 근심 없는 당신의 밝은 얼굴을 볼 수 있어서 다행이라오.

사람이 죽음을 앞두고 인간의 존엄성을 지킨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인 것 같소.

당신이 인생을 평안하게 마감하기를 기도하오. 나의 뜻이

당신의 심령에 전달되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소. 목숨이 붙어 있는 한 항상 옆에서 지켜주겠소.

당신을 사랑하는 남편으로부터.

“내가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아내를 돌볼 테지만 불행히도 내가 먼저 세상을 떠난다면 어떻게 될지 걱정이 된다. 내가 지금까지 조사해 놓은 요양원이 몇 군데 있는데 그곳을 너희가 좀 더 알아보고 어머니를 그곳에 모시도록 해라. 비용은 우리 부부가 살아온 이 집을 처분하든, 너희가 나눠 부담하든 알아서 해라. 마지막 부탁이 하나 있다. 내 평생 너희 3남매가 화목하게 잘 살기를 바라 왔다. 내가 떠난 뒤 너희 어머니만 남아 부담이 되더라도 끝까지 너희 3남매가 화목한 가정을 지키길 바란다.” 이씨는 아내보다 먼저 세상을 떠날 것을 우려해 자식(1남2녀)에게 남기는 유언장을 작성해 뒀다

서울 광장동에 사는 이병래(80)씨는 서울대 법대를 나와 한국화이자 부사장을 지냈다. 은퇴 후에는 한국생산성본부 경영세미나 강사 등을 하며 72세까지 활동을 했다. 현재 치매에 걸린 아내 조숙자(78)씨와 둘이 살고 있다. 아내 조씨는 2002년 치매 진단을 받았으며 현재 알아보는 사람은 오직 남편인 이씨뿐이라고 한다.

◇특별취재팀 = 김창규·김은하·백일현·김진경·김민상·이진주 기자, 사진=변선구 기자, 편집=안충기·이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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