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모차 부대’까지 출동…엄마들이 뿔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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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오후 6시30분 서울광장으로 건너기 직전의 덕수궁 앞길이 노란 풍선을 단 유모차로 가득 찼다. 유모차엔 ‘우리 엄마 배후 세력은 나예요’ ‘미친 소 먹기 싫어요’ 등의 글귀가 붙어 있다. ‘유모차 부대’가 시위에 나선 것이다.

‘열사의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던 1980년대 시위 현장에도, 2002년 효순·미선 촛불집회 때도 주부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런데 쇠고기 집회에선 참가자의 절반가량이 여성이고, 엄마가 상당수다. “내 아이가 광우병 걸린 쇠고기 먹을까 봐” 무작정 나왔다는 것이다.

30일 새벽 2시. 김영선(57·여·서울 녹번동)씨가 시위대와 대치하던 경찰을 막아 섰다. “강제 진압은 안 돼!” 카랑카랑한 목소리다. 김씨는 나흘째 ‘자식들 몰래’ 시위에 참가 중이라고 했다.

“환갑이 낼 모레예요. 나도 옛날엔 데모하는 사람 막 욕했어요. 난 매일 아침 일도 다녀. 그래도 네 살 먹은 내 손자가 그런 고기 먹는 건 싫다고.”
28일 오후 10시 촛불문화제가 끝난 뒤 만난 주부 김모(25)씨는 분홍색 야구 모자를 눌러쓴 얼굴이 앳돼 보였다.

“당연히 집횐 처음이죠. 광우병 위험하다고 해서 나온 거예요. 우리 혜진이한테 그런 거 못 먹여요.”

김씨는 포대기로 16개월 된 딸을 들쳐 업고 “인천 가는 버스 막차 시간 됐다”며 걸음을 재촉했다. 그러나 파이낸스센터 정문 앞 인도에 차량을 세우고 출입을 통제하던 경찰이 가로막았다. 군중이 “애 엄마는 보내주자!”고 연호했다. 길은 뚫리지 않았다. 청계광장 뒤쪽, 광화문우체국… 길은 모두 막혀 있었다. 혜진이 엄마가 악을 쓰기 시작했다. “집에 가고 싶다고! 아기랑 여기서 노숙하란 말이야? 너희들은 인정도 없어?” 10시42분, 경찰이 포위망을 풀었다. 혜진이 엄마는 눈물을 훔치며 서둘러 떠났다. “오늘 이렇게 고생하셨는데 또 나오실 건가요?”(기자) 젊은 엄마의 눈에 불꽃이 튀었다. “당연하죠! 내일도, 모레도, (고시 철회)될 때까지 나올 거예요.”

‘혜진이 엄마’는 늘어만 가고 있다. 29일에는 100여 명의 ‘유모차 부대’가 대낮 행진을 했다. 이들은 투쟁가 대신 ‘곰 세 마리’를 부르고 아이들에게 담요 대신 태극기를 둘러 주었다. 이들은 “아기를 방패 삼는 게 아닌가 고민도 했지만, 우리 아기 건강을 지키기 위해 나왔다”고 말했다. 다음날 당장 인터넷에 ‘유모차 부대’ 모임이 생겨났다. 31일 덕수궁에 유모차를 몰고 온 엄마들은 ‘청와대 진격’을 얘기하고 있었다. 엄마들이 단단히 뿔이 났다.

구희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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