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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 집권당 맞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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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쇠고기 정국’은 과학의 영역을 벗어났다. 성난 시민이 1만 명씩이나 서울 청계광장에 모이는 이유가 ‘미국산 쇠고기를 먹고 광우병에 걸릴 과학적 확률이 아주 높아서’가 아닌 것이다. 이들이 매일 밤 모여 토로하는 것은 ‘내 나라, 내 정부로부터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서 오는 분노요, 배신감이다.

이런 국민 감정을 달래는 게 한나라당의 몫일 터다. 정부와 책임과 권한을 나눠 가진 국정운영의 한 축이자 민의(民意)를 대변하는 국회에서 과반 의석을 차지한 정당이어서다. 따라서 정부에 완전한 안전대책을 끊임없이 요구하고 정부 시책을 국민에게 설득해야 한다. 이게 과반 여당의 책무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쇠고기 수입 장관 고시로 촉발된 시위가 새벽까지 이어졌던 30일. 당 주요 당직자회의에서는 이런 발언이 나왔다. “쇠고기 고시는 근본적으로 대단히 과학적이고 전문적인 분야다. 국민의 생명과 관련된 식품 안전에 대해 어느 정부가 소홀히 하겠느냐.” 전날 고시가 발표된 직후에 나왔던 당의 논평도 비슷했다. 대변인은 “정부가 상당히 노력했고, 안전대책 마련에 최선을 다해 각별한 대책을 수립했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종합하면 이렇다. 한나라당은 정부 대책을 ‘과학적이고 전문적인 분야에서 소홀하지 않게 노력한 결과 내놓은 각별한 대책’이라고 생각한다는 거다. 그리고 그런 견해를 언론을 통해 전파하며 국민이 공감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물론 맞을 수 있다. 시간이 흘러 “3억 명의 미국인이 먹는 것과 똑같은 쇠고기를 수입하겠다”는 정부 설명이 틀리지 않았다는 게 입증될 수 있다.

하지만 사실 여부를 떠나 국민 다수가 당장 광우병에 대한 공포와 정부에 대한 불신으로 화가 나있다. 그런데 과반 여당이라는 곳이 “정부가 상당히 노력했다” “과학적인 분야다. 어느 정부가 국민 건강을 소홀히 하겠느냐”고만 되뇌고 있는 것은 옳지 않다. 그것도 방송 카메라가 불을 밝히고 있는 곳에서만 말이다. 그간 한나라당이 바닥 민심을 달래기 위해 한 일은 각 당원협의회(예전 지구당)로 정부의 안전대책을 설명하는 e-메일을 발송한 게 거의 전부다. 그것도 장관 고시가 발표된 날에 한 일이다.

이제라도 책임을 다하려면 한나라당은 거리로 나서야 한다. 정말 정부 대책이 각별한 것이라 믿는다면 청계광장으로 나가 시위대와 마주앉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들의 성난 목소리를 듣고 그들을 다독거리고 그들을 설득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남궁욱 정치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