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남북관계 투명성 강조한 대법 판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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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이 엊그제 임동원 전 국가정보원장 등 대북 송금사건으로 기소된 피고인들에게 원심대로 유죄를 선고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4월 특검 수사가 시작된 지 1년 만에 박지원 전 대통령 비서실장을 제외한 이 사건 관련 6명 모두에게 유죄가 확정됐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논란이 됐던 통치행위론에 뚜렷한 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동안 관련 피고인들은 재판 과정에서 대북 송금이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감안한 고도의 통치행위에 따른 것이라는 주장을 펴왔다. 그러나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고도의 정치성을 띤 국가 행위에 대해 사법심사를 억제한다는 통치행위의 개념을 인정한다 해도 절차를 어기고 북에 4억5000만달러를 송금한 행위 자체는 사법심사의 대상이 된다"고 못박았다. 정치적 판단에 따른 통치행위라 하더라도 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절차상의 불법 행위는 단죄 대상임을 분명히 선언한 것이다.

대법원이 국민적 합의 과정을 강조한 원심 판결을 재확인한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지난 정부 시절 대북지원 사업은 몇몇 인사들에 의해 밀실에서 결정돼 왔고 결국 '퍼주기'란 비판을 자초했다. 물론 국민적 합의 과정을 거치려면 어느 정도 진통이 수반되고 시간도 더 걸릴 수밖에 없다. 그렇다 해도 절차적 적법성과 투명성 확보가 더 중요하다는 게 대법원의 판단이다. 재판부가 판결문을 통해 "국민적 합의 과정을 거친 후에 실정법 범위에서 대북 송금을 하고 회담을 개최하는 것도 정치적 선택의 한 방법"이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남북관계의 개선은 누구도 반대하지 않는 국민적 염원이다. 북한동포들을 위한 인도적 지원 사업도 계속돼야 한다. 그러나 남북관계의 개선이든 대북 지원사업이든 그 진행 과정은 유리알처럼 투명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정부가 야당 측에도 사업진행 상황 등을 설명해줘야 한다. 그래야만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고 불법 행위도 차단할 수 있다. 그것이 이번 대법원 판결의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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