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내 생각은…

교육도 유행만 좇아 줏대 갖고 자녀 지도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우리는 바야흐로 영상매체 시대에 살고 있다. 신문까지도 인터넷을 통해 볼 수 있으며 문학책들도 도서관 정보프로그램을 통해 화면으로 읽는 시대다. 재미있는 게임에 빠져 사는 청소년들은 종이책을 멀리하고 있다. 클릭만 하면 답이 튀어나오는 단답 형식에 익숙해지다 보니 인내심이 없어지고 조금 복잡한 생각을 해야 할 문제는 아예 외면해 버리고 만다. 또 자기 주관에 따라 개별적으로 옳고 그름을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많은 숫자의 사람들이 따르는 주장을 옳은 것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심해지고 있다.

이렇게 된 데는 어른들의 사고방식이 오염된 탓도 크다. 우리 민족은 36년간 일본 치하에서 그들의 문화와 역사를 배웠다. 그 시대에 학교를 다닌 나의 시부는 귀한 과일과 생선 등이 식탁에 오르면 '이건 왜정 때 일본 사람들만 먹던 것'이라며 흡족하게 여겼다. 지금은 매우 흔한 서민층 음식인데도.

그 후엔 모든 중심이 미국으로 바뀌었다. 미국서 공부하고 학위를 땄다는 사람들은 대부분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미국을 기준으로 삼아 옳고 그름을 따지려 들었다. 여기에 영향을 받고 자란 아이들은 음으로 양으로 사대주의에 젖어 전통적인 우리 것은 저급하고 부끄러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짙어졌다.

과학적으로는 그들이 앞섰다 해도 문화적으로는 그들의 짧은 역사가 우리를 앞지를 수 없다. 그런데도 우리 고유의 다도 예법을 가르쳐 주면 고루하다고 핀잔을 주면서 커피를 숭늉처럼 끓여놓고 음료수 따라 마시듯 하는 청바지 차림의 그네들을 멋있고 세련된 모습으로까지 보고 있는 식이다. 또 세탁기에 휘둘려 낡아 찢어진 청바지를 보고 멋있다며 새것을 찢어 입으며 유행에 앞서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많은 이가 하는데 나만 안 입으면 '왕따'가 될 것 같아 너나없이 청바지를 찢는다.

이렇게 우리는 여론의 홍수 속에서 판단을 잃어 가고 있다. 많은 숫자에 눌려 옳은 사실을 주장하지 못하고 무조건 대다수의 의견만 좇아가는 처세를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요사이 정치는 더욱 그렇다. 영웅이든 소시민이든 좀더 사려깊고 앞을 내다보는 폭넓은 사고를 한다면 우리의 실책과 실수는 그만큼 줄어들 것이다.

특히 앞으로 이 나라 주인이 될 자녀의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어머니들은 남이 하는 교육에 흔들리지 말고 소신껏 자기 아이의 장단점과 개성을 분석해 거기에 맞는 교육을 선택해야 한다. 복습형으로 성적을 올리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예습형으로 공부해야 더 창조적인 면을 발휘하는 아이들도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가치관은 이 사회와 부모의 판단에 영향받아 형성된다. 많은 사람의 숫자에 눌려 잘못된 판단에 휩쓸리는 일은 없는지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하는 힘겨운 시대다.

윤정옥 서울 양천구 신월동 예지글방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