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싸움 2~3분 만에 인터넷에 동영상 …‘자전거 선발대’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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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집회 참가자들이 촛불집회를 마친 뒤 도로를 점거하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뉴시스]

25일 오후 11시 서울 서대문로터리, 시위대 100여 명이 독립문을 향해 뛰었다. 6시부터 ‘청와대로 가자’는 구호와 함께 광화문·시청·명동·서울역 등 도심을 질주했던 이들이다.

“이쪽으로 가면 안 돼요” 하는 외침이 대열 속에서 들려왔다. 선두로 뛰어간 20대 남자는 “이쪽은 경찰이 막고 있다”고 알렸다. 다음 행선지를 놓고 토론이 열렸다. 대열은 결국 “학생들이 많은 신촌으로 가자”는 제안에 따랐다. 갑자기 나타난 30대 남성은 “길이 좁으니 3열로 가자. 플래카드를 일렬로 들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오후 12시40분 신촌로터리에 시위대가 도착하자 경찰이 연행에 나섰다. 몸싸움은 곧 인터넷에 ‘중계’됐다. 2~3분 만에 ‘방패로 맞아 2명이 쓰러짐-충돌, 비명’ 글이 올랐다. 누군가 휴대전화 카메라로 촬영한 듯한 ‘진압 동영상’도 떴다. 게시판은 곧 ‘XX사이트에 동영상이 있다. 시위대에 합류하자’는 글이 빗발쳤다.

연이틀 이어진 도로 점거 시위를 두고 경찰은 26일 “배후에 불법행위를 주도한 이들이 있다”며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경찰을 따돌리는 거리 시위대의 능숙한 ‘숨바꼭질’ ▶인터넷을 활용한 선전·선동 등을 근거로 본다.

그러나 관련 단체들은 “네티즌의 뜻에 따른 자연 발생적인 시위”라며 반박한다.

◇“시위 주도세력 추적”=경찰은 불법 시위를 주도한 조직이 있을 것으로 보고 배후를 추적 중이다. 어청수 경찰청장은 이날 오전 기자간담회에서 “(전날) 시위대의 코스를 볼 때 치밀했다. 시위를 많이 해 본 사람이 리드(지도)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난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집회 등 대형 도심 집회에서 자주 보이는 ‘전술’과 유사하다는 설명이다.

25일 오후 6시 시위대는 청와대 진출을 시도했다. 광화문에서 경찰에 가로막힌 이들은 돌연 반대 쪽인 서울역으로 이동했다. 전·의경이 미처 배치가 되지 않은 ‘구멍’이었다.

시위대는 이어 숭례문·명동·동대문·대학로·독립문을 오갔다. 어 청장은 “특정 지역(청와대)을 진입하려던 의도다. 일반인들의 순수한 코스로는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의도적인 ‘숨바꼭질’로 경찰력을 분산시켜 목표에 진출할 기회를 엿봤다는 것이다.

거리에 나선 시각도 절묘했다. 촛불 집회는 오후 7~8시에 개최됐다. 경비부대도 이 시간에 맞춰 배치된다. 그러나 25일의 시위대는 촛불 집회를 시작하기 전인 오후 6시 무렵 도로로 진출했다. ▶자전거를 탄 ‘선발대’가 코스를 미리 살폈고 ▶시위대의 진로가 실시간으로 인터넷에 오른다는 점도 경찰이 배후가 있다고 판단하는 근거다.

◇“네티즌 주도 시위”=촛불집회를 주관하는 국민대책회의 등은 “주최 측은 물론 특정 단체나 조직이 개입한 게 아니다”고 반박했다. 박원석 국민대책회의 상황실장은 “24일 밤샘 시위 이후 주최 측의 통제가 어렵다. 가두에 나서는 걸 말리지만 중구난방인 네티즌 집단이 집회를 주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24일 밤 세종로 도로 점거 시위 때 주최 측인 대책회의는 오후 10시30분쯤 참가자들에게 ‘집회를 끝내자’고 권유했다. 그러나 참가자들은 통제를 거부했다.

천인성·장주영·이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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