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는살아있다>우리에게 절실한 고향갖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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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해안에 있는 집에서 20여㎞ 떨어진 서재에 출근하려면 먼저 산기슭의 산업도로로 올라간 다음 중산간을 가로지른다.
산업도로로 올라가는 길은 오름(기생화산)들이 옹기종기 솟아 있는 품으로 뛰어드는 느낌이다.한라산에서 동쪽으로 흘러내려오는등성이로 물장오리.개오리.절물오름.지그리오름.새미오름.꾀꼬리오름 등이 한 모퉁이 돌아설 때마다 스카이라인의 모습을 바꿔준다. 산업도로에서 동쪽으로 향하면 바로 오름의 왕국이다.오른쪽으로 꾀꼬리오름.대천이.민오름.부대-부소오름.성불오름.모지오름,왼편으로 새미오름.우전제비.검은오름.비치미오름.개오름을 이어 성읍마을 뒤의 영주산까지 오름들과의 눈인사가 쉴새없 이 이어진다.이 오름들을 한낱 흙덩어리.바위덩어리로 여기지 않고 마음의친구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큰 복이다.이런 복을 누리게 된데는 누구보다 김종철(1927~95년)님께 고마움을 느낀다.
이곳 한 신문에 연재되던 『오름나그네』를 간간이 읽으며 제주의 자연속에 자신의 세계를 펼쳐낸 품이 눈길을 끌었지만 쓴 분이 누구인지 큰 관심은 없었다.
그러다 얼마전 『오름나그네』가 세 권의 책으로 나왔을 때에야비로소 쓴 분이 어떤 분인지,그리고 이 글들이 어떻게 쓰여진 것인지 알게 되었다.평생을 제주 언론계에서 활동하며 제주의 자연과 인문을 몸과 마음으로 지키고 키워온 분이라 는 것을.은퇴후 혼신의 힘으로 이 땅에 대한 사랑을 펼쳐낸 것이 이 글들이라는 것을.
책을 구하고 며칠을 인사불성으로 그 속에 빠져 지낸 후 제주의 자연은 새로운 감각으로 내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이따금 일삼아 오름을 찾아 오를 때는 말할 나위도 없고,출근길에 지나치며 바라보는 오름에서도 자연사랑.향토사랑이 배어나오는 그의 목소리를 듣는 듯 하다.
2년전 이곳 제주로 옮겨오면서도 고향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 꿈은 꾸지 못했다.김종철님의 마음을 만남으로써 그 꿈을 가지게되었다.고향을 얻는 꿈,현대인에게 이보다 더 절실한 꿈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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