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러 카레이스키3세 국내아이스하키서 맹위빅토르 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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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69년 시베리아 크라스노야르스크 출생▶75년 부모(아버지=중기계 엔지니어로 91년 작고,어머니=안과의사)를 따라 모스크바 교외 엘렉트코스탈리로 이주▶80년 아이스하키 시작▶89~93년 러시아스포츠아카데미 재학▶93자코파네 겨울유 니버시아드 출전▶87~94년 엘렉트코스탈리 소재 크리스털 클럽에서 센터포워드로 활약▶91년 러시아인 옥사나(교사.러시아어문학)와 결혼,아들 1명▶94년12월 실업팀 입단차 방한▶95년5월 고려대3학년 편입▶키 180㎝,몸무게 78 ㎏ 카레이스키 3세 빅토르 이(26.고려대.한국명 이용민)-.뼛속까지 파고드는 추위 앞에 세상 거의 모든 것이 부들부들 떨고 있던 지난해 12월 어느날 가방 하나 둘러메고 할아버지나라를 찾은 그의 가슴은 오히려 이글이글 불타고 있었다 .
『그저 핏줄이 같다고 동정만 받을 순 없다.실력으로 보여주마.』 그는 아이스하키 강국 러시아에서도 알아주는 스타.93년2월 폴란드 자코파네에서 열린 겨울유니버시아드에 카레이스키로는 유일하게 러시아대표로 출전,국내에 알려진 그는 아이스하키팀을 창단한 석탑건설의 요청으로 서울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것이었다.모스크바 교외 엘렉트코스탈리에 동갑내기 부인 옥사나와 갓난 아들,거동조차 불편한 할머니(81)와 홀어머니(59)를 남겨둔채. 당장 뛰어들어 휘젓고 싶었던 「한국의 얼음판」은 그러나 예상외로 차가웠다.다름아닌 뛰어난 그의 실력 때문이었다.「밖」에서는 「같은 핏줄」이라며 따스하게 대해주던 「할아버지나라 사람들」은 막상 그가 들어오자 외국인은 실업팀에서 뛸 수 없다는규정을 들어 『빅토르의 국적은 엄연히 러시아』라고 토를 달기 시작했다.
『어떻게 찾아온 조국인데….』이름까지 바꾸고 「때」를 별러온그는 주저앉을 수 없었다.그래서 입게 된 것이 고려대 유니폼.
***[ 37면 『스타와이드』서 계속 ] 93년 이미 대학(러시아스포츠아카데미)을 졸업했지만 지난 5월 유학생 신분으로 고려대 노문학과 3학년에 편입한 것.
때문에 그의 국내 데뷔는 서울 도착 이후 꼬박 여섯달이 걸렸다.6월28일부터 7월4일까지 서울 목동링크에서 열린 전국종별선수권대회.두세살 아래 「동생들」과 호흡을 맞춘 지 한달만에 얼음판에 오른 그는 삭여온 섭섭함을 쓸어버리려는 듯 무섭게 스틱을 휘둘렀다.4게임에서 3골.4어시스트.그의 활약은 전년대회3위 고려대를 우승으로 끌어올렸다.
그것은 약과였다.실력으로 보여주리라던 그의 다짐은 지난달 열린 KBS배 대회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양손으로 비스듬히 스틱을 잡고 얼음판을 이리저리 미끄러져 다니다가도 빈틈이 보이면 쏜살같이 빨려들어가 퍽을 낚아채는 순발력,두겹 세 겹 둘러싼 수비벽을 가볍게 제쳐내는 돌파력,어느 각도에서든 펑펑 쏘아대는슈팅력….6게임에서 8골.4어시스트를 쏟아내 득점상을 받았다.
지난 2일 개막된 제50회 전국종합선수권에서도 그는 아이스하키 선수로서 갖춰야 할 모든 것을 보여주며 목동링크를 뜨겁게 달궈놓고 있다.
시베리아 한복판 크라스노야르스크에서 태어나 엔지니어 아버지(91년 작고)를 따라 엘렉트코스탈리로 옮겨가 살면서 스틱을 잡기 시작한 카레이스키 3세가 마침내 조국의 얼음판에서 매서운 맛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그러나 호사다마라 할까 .그의 실력은 또다시 덫이 돼 그의 발목을 죄고 있다.다른 대학들마저 국적문제를 물고 늘어지는 바람에 다음달 시작될 한국시리즈에 뛸 수 없게 된 것.
나중에 불러들인 부인.아들과 함께 고려대 기숙사에 머물면서 「조국생활」에 차츰 적응해온 그는 이 때문에 얼음판을 벗어나면최고스타가 된 기쁨보다 언제 짐을 꾸려야 할지 모른다는 불길한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국적취득문제도 「거주5년이상」이라는 제약에 묶여 더욱 빅토르를 고민스럽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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