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에 갇힌 아이들] 4. "집 좁아서…친구 데려온 적 없어요" 79%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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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소외=한국도시연구소 신명호 부소장은 "아이들이 가난으로 인해 느끼는 소외는 크게 두 가지"라고 했다. 하나는 주거 형태에 대한 불만, 다른 하나는 친구들과의 문화적 경험에서 오는 차이라는 것이다. 모두 또래 집단과 자신을 비교해 느끼는 상대적 빈곤의 범주에 속한다.

실제로 본사 취재팀이 서울 시내 저소득층(기초생활보장 대상) 초등학생 61명을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9%(48명)가 '다른 동네에 사는 학교 친구를 집에 데려온 적이 전혀 또는 별로 없다'고 답했다.

이와 관련, 신부소장은 "이러한 결과가 나타난 건 빈곤층 아이들이 비좁고 지저분한 자신의 집을 학교 친구들에게 숨기려고 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또 취재팀이 빈곤지역 공부방에 다니는 초.중.고교 학생 406명에게 '지난 1년간 가족과 함께 영화관이나 공연장에 얼마나 자주 갔는가'라고 묻자 응답자의 61.1%(248명)가 '전혀 없었다'고 답했다. 이들에게 '놀이공원이나 동물원에 얼마나 자주 갔는가'라고 물었을 때도 응답자의 57.6%(234명)가 '전혀 없었다'고 했다.

◇정보 격차=상당수 빈곤층은 집에 컴퓨터가 없거나, 있더라도 고물(古物)을 갖고 있다. 또 집에서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는 아이는 10명 중 4명도 안 된다. 이런 계층별 정보 격차는 교육기회와 경제활동의 불평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한국정보문화진흥원 정보격차센터가 최근 기초생활보장 1000가구를 표본 조사한 결과 46.7%(전체 가구 평균 77.9%)만 컴퓨터를 갖고 있었다. 특히 보유 컴퓨터 중 인터넷 동영상을 띄우기 힘든 펜티엄Ⅱ급 이하의 기종이 45.3%에 달했다. 또 집에서 인터넷 접속이 가능한 비율은 38.8%로, 전체 가구 평균(69.8%)에 비해 크게 낮았다. 이는 빈곤층 아이 10명 중 4명이 숙제를 인터넷으로 보내려면 친구 집이나 PC방에 가든지, 아니면 숙제를 포기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월 3만원대인 초고속 통신망 사용료를 부담 없이 지불할 저소득층은 많지 않다.

◇집단 따돌림='왕따'당하는 원인은 여러 가지다. '약해 보여서' '행동이나 말이 어눌해서' '공부를 못해서' '잘난 척해서' 등이다. 하지만 소득 계층별로 보면 빈곤층 아이들이 집단 따돌림의 표적이 될 가능성이 다소 크다. 취재팀이 빈곤지역 공부방 아동을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 5명 중 1명이 왕따 경험이 있다고 답한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또 취재팀이 저소득층 초등학생 61명에게 '학교에서 함께 짝꿍하기 싫다고 거절당한 적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응답자의 18%(11명)가 '그렇다'고 답했다. 아이들은 그 이유도 설명했다. '못살아서'(5명), '지저분하거나 아파서'(5명), '짝의 엄마가 짝에게 친하게 지내지 말라고 해서'(3명), '공부를 못해서'(1명) 등….

◇학대.가출=2002년 현재 전국의 해체 가정 수는 96만7500가구로 추정된다. 그리고 이런 가정의 해체 당시 수입은 월평균 85만원이다. 경제적인 어려움이 가정 해체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보건사회연구원.2002년).

빈곤에 의해 해체된 가정에선 아동 학대가 벌어질 가능성이 커진다. 취재팀이 중앙아동학대예방센터에 접수된 아동 학대 사례를 가족 유형별로 분석한 결과 편부모 가정의 아동이 2001년 879명에서 2003년 1434명으로 크게 늘었다. 반면 일반 가정은 같은 기간 536명에서 696명으로 조금 느는 데 그쳤다.

아동 학대자는 직업별 구분에서도 차이가 뚜렷하다. 2003년 아동 학대자를 직업별로 보면 무직(25%), 단순 노무직(18%), 서비스.판매직(9.5%) 등 저소득 직업군이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특히 단순 노무직 학대자는 2001년 277명에서 2003년 534명으로, 무직 학대자는 570명에서 723명으로 크게 늘었다. 반면 사무직 학대자는 같은 기간 55명에서 45명으로 오히려 줄었다.

매년 가출하는 청소년은 7만~10만명(한국청소년쉼터협의회 2003년 추정치). 청소년보호위원회가 가출 경험이 있는 청소년 1322명을 상대로 조사해 지난해 발표한 결과를 보면 '가출 이전에 친부모와 함께 살았다'고 답한 비율은 전체의 30%에 그쳤다. 그렇다면 가출 청소년의 70%가 해체 가정에서 발생하는 셈이다. 숫자로는 연인원 5만~7만명의 해체 가정 아이들이 집을 뛰쳐나간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특별취재팀=이규연.김기찬.김정하.손민호.백일현.이경용 기자
사진=안성식.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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