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그룹 시크릿 가든과 앨범 작업…뉴욕서 만난 신영옥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8면

▶ 뉴욕의 한 스튜디오에서 녹음중인 신영옥씨.

3월의 뉴욕은 서울보다 쌀쌀했다. 맨해튼의 고층 건물들 틈에서 불어오는 바람 탓인지 조금은 옷깃을 여며야 했다. 그러나 이 여인과의 만남은 함께하는 사람을 유년기로 돌아가게 할 만큼 천진하고 훈훈했다. 무엇보다 돼지고기를 성큼성큼 집어먹는 모습은 소탈함 그 자체였다. 정말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성악가가 맞긴 맞는 것일까.

지난 25일(한국시간) 미국 뉴욕 63번가에 위치한 한 스튜디오에서 신영옥(43)씨를 만났다. 이날 신씨는 다음달 발매될 시크릿 가든의 베스트 앨범에 수록될 노래 세곡을 녹음했다. 시크릿 가든(Secret Garden)은 노르웨이 출신의 뉴에이지 혼성 듀오. 1990년대 후반 절찬리에 방영된 TV 드라마 '젊은이의 양지'에 삽입된 'Song from a Secret Garden'이 크게 히트하면서 국내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지금까지 발매된 네장의 앨범은 80여만장이 팔렸다.

신씨가 시크릿 가든의 베스트 앨범 작업에 참여하게 된 것은 음반을 제작한 유니버설 측의 아이디어였다. 북구 유럽의 신비하면서도 애잔한 사운드에 신씨의 곱고 청아한 목소리가 어울린다고 판단한 것. 시크릿 가든 멤버들은 "예전부터 존경해오던 신씨가 우리 연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라며 자신들이 직접 작사한 노랫말을 신씨에게 헌사했다. 신씨는 "대부분 단조로 이루어진 시크릿 가든의 연주 음악은 한국적 정서를 담고 있는 듯해 특히 요가할 때 즐겨 들어왔다"며 선뜻 녹음에 응했다.

이날 신씨는 청바지와 흰색 스웨터의 캐주얼 차림으로 스튜디오에 나왔다. 마흔을 훌쩍 넘겼다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을 만큼 날씬한 몸매였다. "20대처럼 보인다"는 기자의 인사말에 신씨는 "뒤에서 보면 여고생이지만 앞에서 보면 할머니죠 뭐"라고 받아쳤다. 녹음 중간 휴식시간에는 "난 미국에서 20년 넘게 살았지만 아직도 다방 커피가 제일 맛있어요"라며 분위기를 편하게 이끌기도 했다.

그러나 일에 대한 욕심만큼은 무척이나 강했다. 'Song from a Secret Garden'은 저음 부분이 많아 고음에 강한 그녀로선 소화하기 상당히 힘든 노래. 자신이 부르고도 마음에 들지 않았던지 프로듀서의 오케이(OK) 사인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몇 번이나 다시 부르곤 했다. "클래식을 잘한다고 크로스오버곡들을 잘 부르는 건 아니거든요. 발성하는 방법도 다르지만 무엇보다 감정선을 잘 살려야 하니깐요. 제가 괜히 좋은 노래 망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어요." 그냥 겸손한 척하며 하는 말이 아니었다. 그녀에 대해 왜 주변에서 '겸양지덕(謙讓之德)'이란 말을 많이 하는지 수긍이 갈 듯 싶었다.

4시간여에 걸친 녹음이 끝난 뒤 저녁도 함께했다. 혼자 사는 그녀는 김치찌개.된장찌개 등 한국 음식을 즐겨 먹는다고 말했다. 문득 우문 같았지만 혼자 사는게 어떤가 물어봤다.

"제가 노래만 할 줄 알지 아직 세상 물정을 몰라요. 미국에 살면서도 운전도 못해 언니 신세만 지고 있죠. 착하고 그저 성실한 사람이면 될 것 같은데 아버지나 언니는 능력있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고 하죠. 전 그래도 자상하고 유머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요." 한국에 있는 홀로 된 아버지와는 하루에 꼭 한 번씩 국제전화를 한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외로움은 많이 타는 듯 보였다.

그녀는 지금도 레슨을 받는다고 한다. "아까도 보셨잖아요. 낮은 음역대는 제가 약하거든요.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바로 소리가 망가지니깐요."

그녀가 오랫동안 세계 최고라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단의 프리마 돈나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비결을 엿보는 듯 싶었다. 목을 보호하기 위해 수시로 꿀물을 먹는단다. 하루에 한시간 이상씩 달리기와 헬스를 하는 게 체력을 유지하는 비결이라고. 그럼 휴식할 땐 주로 뭘 하면서 시간을 보낼까. "친구들 만나 먹고 수다 떠는 게 제일 좋죠. 아 한가지 더 있어요. 한국 가요 듣는 것 좋아해요. 이승철씨나 신승훈씨 노래 좋아하고요, 특히 임창정씨는 노래 너무 잘하는 것 같아요."

뉴욕=최민우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