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씨 부정축재 사건-비자금만 金이냐 입닫은 盧씨 속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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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노태우(盧泰愚)전대통령은 장장 16시간 이상 진행된 검찰조사에도 불구하고 돈을 준 기업인들에 대해 일절 입을 열지 않았다. 盧씨는 주임검사인 문영호(文永晧)중수부 2과장이 50대 그룹 명단을 들이대며 일일이 금품제공 여부를 물었는데도 『대다수알려진 기업들로부터 돈을 받았으나 액수등은 기억나지 않으며 기업인 이름도 말할 수 없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 졌다.뿐만 아니라 대선자금 부분에 대해선 아예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는 게수사관계자들의 설명이다.
盧씨가 빗발치는 비난 여론과 검찰의 집요한 추궁을 감내하며 비자금 제공자와 대선자금등에 대해 함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盧씨는 『국가의 불행과 경제 혼란을 막기 위해 밝힐 수없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2,000억원 가까운 돈을 차명계좌에 숨겨놓은 盧씨가이제와서 국가의 불행 운운하는 것은 옹색한 변명에 불과하다.
한 검찰관계자는 『盧씨의 함구가 무기징역 또는 10년 이상 징역형을 받게 되는 특가법상 뇌물수수죄 적용을 피하려는 계산된행동같다』고 풀이했다.즉 돈을 준 기업인들을 먼저 보호하면 나중에 기업인들이 소환되더라도 돈의 성격을 「뇌물 」이 아닌 「성금 또는 정치자금」으로 진술해줄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는 얘기다. 뇌물수수죄라는게 돈준 사람과 받은 사람의 진술이 일치해야 적용할 수 있기 때문에 盧씨 입장에선 뇌물공여 혐의를 피하려는 기업인들이 액수를 줄여 진술하거나 돈의 성격을 「성금」 또는 「떡값」등으로 말할 때까지 입다물며 기다리는게 유 리하다. 또 수사가 장기화될 경우 들끓는 여론이 어느 정도 가라앉을가능성이 있는데다 검찰수사에 대응하기 위한 시간도 벌 수 있다는 현실적 계산도 작용했을 것이다.
안강민(安剛民)중수부장도 『盧씨가 자금조성 경위부터 발뺌하는바람에 수사가 장기화될 것같다』며 수사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그러나 검찰은 盧씨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한보외에 비자금을실명전환해준 기업체 몇개를 더 찾아냈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는▶중견기업을 잇따라 인수하며 재계의 신데렐라로 떠오른 K그룹▶덩치에 걸맞지 않게 막대한 돈을 들여 최근 금융기관을 인수한 S건설▶공사비를 모두 후불로 받는 방법으로 도급순위가 껑충 뛰어오른 H건설에 盧씨의 비자금이 흘러 들어갔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특히 盧씨가 대선자금 부분에 대해 답변조차 하지 않았던 것은사법처리후 사면을 기대하고 있는데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
盧씨가 대선자금을 스스로 공개하면 현 정부에도 엄청난 부담을안겨주게 되고 그럴 경우 「선처」를 기대하기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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