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칼럼>한.일 축구열기 재보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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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지난 10월17일 일본정부는 내각 임시정무회의를 소집하고 2002년 월드컵 유치를 위해 전 내각이 적극 나서기로 의견을 모았다.한일합방조약 관련 망언으로 양국 관계가 미묘한 시기에 일본정부가 새삼 월드컵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 은 정치 장외에서의 한판을 각오한 만만치 않은 의지의 표현으로 풀이된다.
홀스트 슈미트 독일축구연맹 사무총장을 단장으로 하는 5명의 국제축구연맹(FIFA)조사단일행이 31일부터 4일간 실사를 위해먼저 서울에 온 것을 계기로 한일간의 유치전은 본격적인 전단을열게 된다.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으며 상황은 나라의 체면을 건 건곤일척의승부로까지 비약할 판세다.양국 정부가 유치신청서의 내용을 보증했고 국민감정이 유치여부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사실을 의식하는한 이 문제는 그 무엇이라도 뚫는 창과 그 무엇 에도 뚫리지 않는 방패의 논리 그대로 민감하고 난해한 문제로 남을 것이다.
FIFA에 제출한 유치신청서의 내용을 보면 양쪽 모두 역대 어느 대회도 따를 수 없는 완벽한 경기장과 교통통신.숙박등 부대시설의 확보,거기에다 막대한 수익금의 축구기금화를 약속했으며올림픽과 아시안게임을 성공적으로 운영한 경험 축 적등 기본조건의 총족이라는 점에서 난형난제로 우열을 가리기가 어려운 실정이다.일본이 경제대국이라고는 하지만 한국 역시 월드컵의 개최조건을 충족할만한 여력은 충분하다.그것은 보다 규모가 큰 서울올림픽을 거뜬히 수용한 것으로 증명되지 않는가.
월드컵은 축구문화의 축적과 국민적 관심의 척도가 모든 것에 우선해왔다.그것은 두차례나 월드컵을 개최한 멕시코의 경우가 웅변해준다.1954년 스위스에서 열린 제5회 월드컵에 아시아지역대표로 처녀출전한 한국은 헬싱키 올림픽 우승팀인 강호 헝가리에9대0으로 대패,세계와의 벽을 실감했다.이때 골키퍼로 활약한 홍덕영(洪德泳)씨는 수십개의 슈팅을 막느라 가슴에 멍이 들었고그것은 대포알같은 위력이었다고 회고했다.선수들이 현지에서 겪은수모와 좌절은 터키에 7대0으 로 완패했을 때 절정을 이뤘다.
그로부터 32년,한국은 멕시코대회에서 월드컵과 다시 해후했다.
아시아를 대표한 출정이기는 했으나 거푸 세차례의 한국월드컵 출전사는 영광 못지 않게 약체로서의 능멸과 모욕.자학을 극복해야하는 과제만 떠맡 은 계기가 됐다.오늘날 아시아 축구가 세계수준에 접근할만큼 성장한 배경에는 월드컵 무대에서 오랜 세월동안한국이 몸으로 때우고 정신적 학대로부터 견뎌낸 고통의 총화가 밑거름이 됐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된다.FIFA가 아시아 지역에 대회 개최권을 인정하는데 가장 비중을 둬야 할 덕목은 아시아 축구문화의 오늘을 있게한 인과와 미래의 가능성이라 생각한다. 윈스턴 처칠의 『과거를 과거라고 해서 외면한다면 그것은 미래를 포기하는 것과 같다』는 말에 공감이 간다.축구문화에 대한또하나의 기준은 축구에 대한 국민의 애정과 인식도다.1954년이래 한일양국 대표팀간의 승패는 67전42승14 무11패로 한국의 절대우세다.길을 막고 물어보라.축구가 국기라는 대답을 한국아닌 일본에서 들을 수 있는지를 말이다.우리는 축구에 대해 애정과 자부를 갖고있다.그리고 이 자부는 월드컵유치의 열망과도직결된다.
(언론인.KOC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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