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소용돌이 속의 國政관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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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盧씨 비자금파동이 열흘을 넘어서면서 우리는 온나라가 이 사건에 휩쓸린 나머지 다른 국정을 소홀히 하거나 흘려보내는 현상이있지 않을까 염려하면서,결코 그런 일이 없도록 경각심을 촉구하고자 한다.물론 盧씨사건은 샅샅이 진상을 밝히고 끝까지 책임을추궁해야 한다.하지만 이 사건 말고도 우리에겐 심혈을 기울여 추진하고 해결할 과제가 수없이 많다.정부나 국회나 기업이나 사회적 관심이 이 사건의 소용돌이에만 휘말려 이런 과제를 소홀히하거나 기회를 놓친다면 국가적 손실이 아닐 수 없다.
가령 이번 사건이 터지기 직전까지 국민적 관심사로 떠올랐던 한-일간의 역사해석분쟁은 어떻게 됐는가.사법개혁.교육개혁문제는예정대로 추진되고 있는가.침몰선박의 기름유출이 계속되고 있다는데 아직도 속수무책인가.이처럼 盧씨사건만 없었다 면 대통령부터관심을 갖고,국민도 시선을 집중할 많은 문제들이 지금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관심의 사각(死角)지대에 함몰돼 있다.
뿐만 아니라 군포(軍浦)쓰레기문제를 위시해 지자체간의 분쟁이나 지자체-경찰간의 관계재정립문제 같은 것도 정부가 앞장서 해결.조정책을 찾아야 할 문제들인데 비자금파동이후 정부가 이런 일에 신경이나 쓰고 있는지도 모를 정도다.국회만 해도 지금 한창 예산심의에 열을 올려야 할 때인데,정당마다 비자금파동에 코가 빠져 예산안에는 관심조차 보이지 않는다.기업은 기업대로,은행은 은행대로 이번 사건의 직.간접적 영향으로 위축되어 제대로일을 보지 못하고 있다.그바람에 가 뜩이나 심각하던 중소기업의자금난이 훨씬 가중되고 있는데도 당국에서부터 아무런 대책이 없다. 우리 역시 盧씨사건의 엄청난 폭발성과 파장(波長)을 모르지 않는다.그렇지만 사건은 사건대로 엄정.냉철하게 처리하고,정부나 국회.지자체.기업등은 그런 소용돌이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않고 할 일을 하는 의연한 자세를 갖도록 당부하고 싶다.특히 정부는 이런 때일수록 정책추진의 차질이나 행정의 구멍이 없도록살피고 독려해 국정관리에 철저를 기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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