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계몽의 변증법" 호르크하이머.아도르노 共著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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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진보」와「발전」,「이성」과 「실천」-.이 용어들은 근대 이후 인간의 삶과 사유에 필수적 전제를 이루어왔던 개념들이다.
이성으로 자연과 사회를 포착할 수 있으며,주체적 실천에 의해역사가 발전할 수 있다는 진보의 유토피아는 아직도 우리에겐 포기할 수 없는 희망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 희망과는 반대로 현실은 그것을 배반하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인류의 진보에 대한 믿음은 금세기에 경험한 참혹한 야만의 역사로 무너졌다.최근에는 생태계 파괴,종족 사이의 살육전,새로운 정치체제 부재에 따른 정치적 정당성 의 파손 등위기화의 경향들이 보다 심각한 형태로 드러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일각에서는 근대 이래 인류가 추구해온 계몽과 진보의 유토피아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을 요구하기도 한다.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의 시선을 끌만한 책이 최근 번역.출판됐다.40년대에 파시즘 비판을 철학의 과제로 삼았던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핵심 이론가 M 호르크하이머와 Th W 아도르노가 공동으로 쓴 『계몽의 변증법』(문예출판 사)이 그것.
오늘날 현대문명 비판의 교과서로 읽히고 있는 이 책은 최근 더 타임지가 선정한,전후 서구문명에 영향을 미친 100권의 책중에 한 권으로 뽑히기도 했다.
이들이 이론적 화두로 삼았던 것은 전체주의와 그것에 헌신하는테크놀로지-.거기서 더 나아가 그것이 사회적 지배 원리로 확장된 기술적 합리성,그 기술적 합리성에 의해 교육된 대중의 자기파괴적인 집단적 편집증이 어떻게 가능하게 되었는 가등이 다루어졌다.이 책은 이러한 전체주의적 현상들이 다름 아닌 「계몽의 자기파괴」의 결과임을 주장한다.
책 제목이 말하듯 계몽의 개념 자체가 오늘날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저 퇴보의 싹을 함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이 설명하는 계몽의 변증법은 이렇다.근대사회와 함께 계몽은 신화적 공포에 사로잡힌 인간을 이성의 햇볕 아래 드러내 진리와 본질의 세계를 경험케하는 「탈주술화(脫呪術化)」를 의미했다.이성은 산업주의와 결합해 경제적으로는 물질적 풍요를 가져왔으며 사회적으로는 비합리성으로 야기되는 원시적.야만적 공포로부터 인간을 해방시켰다.
그러나 계몽이란게 「계산 가능성과 유용성의 척도에 들어맞지 않는 것」은 모두 의심스런 것으로 간주하는 한 그것은 야만상태로 회귀하게 되며 진보가 퇴보로 전화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라는 것. 계산 가능성과 유용성의 척도는 테크놀로지를 신격화함으로써 모든 자연적인 것을 오만한 인간 밑에 굴복시켜 맹목적 객관성의 지배아래 두었다.나아가 「도구적 이성」으로 전락한 계몽은 사회에 대한 전체주의적 지배를 합리화하는 이데올로기 역할을했다. 이 책은 오늘날 이성과 계몽 그 자체에서 인류의 세기말적 위기를 찾고자하는 다양한 형태의 위기이론들에 그 원형을 제공하고 있다.포스트모더니즘이 그러하듯 오늘날 퇴보 현상의 뿌리를 이성에서 찾는한 이성에 대한 단죄는 불가피한 일처럼 보인다. 그러나 여전히 비합리.비이성에 의한 야만과 무지가 지배하는인류에 이성의 가능성을 부정한다는 것은 오히려 전근대적 광폭과탐욕을 부추기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이성의 위기에서 어떻게 새로운 이성적 전망을 찾느냐가 현재 철학의 아포 리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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