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전대통령 대국민 사과문 발표-연희동 표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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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노태우(盧泰愚)전대통령은 27일TV로 생중계되는 가운데 침통한 표정으로 대국민 사과문을 읽으며 격한 감정에 간혹 눈물을 짓기도 했다.
…盧씨는 이날 오전11시 정각 본채에서 발표장소인 별채 접견실로 내려와 침통한 표정으로 미리 준비한 대국민 사과문을 8분20초간 낭독.盧씨는 『못난 노태우,외람되게 국민앞에 섰습니다』라는 표현으로 낭독을 시작했는데 격한 심정을 가 누지 못하겠다는 듯 문장 사이사이에 간혹 말을 멈추기도 했다.盧씨는 『이자리에 서있는 것조차 말로는 다할 수 없이 부끄럽고 참담한 심정』이라고 자책.
盧씨는 낭독중 시종 고개를 거의 들지 못했으며 『필요하다면 당국에 출석해 조사를 받겠다』는 구절을 읽은후 왼손으로 눈물이차있는 왼쪽 눈을 훔쳤다.
盧씨를 오랫동안 모신 한 경호원은 『내가 각하의 표정과 일거수 일투족을 잘 아는데 각하가 눈물을 훔치는 것을 처음 본다』며 『정말로 각하는 침통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盧씨는 마지막에 『속죄하는 길이라면 무슨 일이라도 하겠다』는대목에 이르자 감정이 북받친 듯 잠시 말을 멈춘 채 멍하니 앞을 응시.낭독이 끝나고 盧씨가 퇴장하려고 할 때 한 기자가 『남은 재산은 어떻게 처리할 겁니까』라고 묻자 盧 씨는 『질문은나중에 받을 기회가 있을 겁니다』라고 답변을 피한채 본채로 들어갔다. 盧씨는 전국민의 들끓는 분노를 의식한 듯 회견문 곳곳에 『지난 며칠간 얼마나 많은 허탈과 분노를 느끼셨느냐』『저를향한 국민의 솟구치는 분노와 질책은 당연한 것』이라고 시종 사죄의 표현을 사용.
…발표가 진행되는 동안 연희1동 자택에는 전날밤 문안작성작업에 참석했던 최석립(崔石立)전경호실장 외에는 내방객이 없어 집안은 오히려 썰렁한 분위기.
서동권(徐東權)전안기부장은 이날 오전 광화문 사무실에서 TV를 지켜본 뒤 외출했으며 정해창(丁海昌)전비서실장은 아침 일찍외출한 뒤 행방이 묘연.
정구영(鄭銶永)전검찰총장은 오전에 제사를 위해 고향인 하동으로 출발했다.
…회견장에 나온 盧씨가 분장을 한 것으로 알려져 눈길.
盧씨가 창백한 얼굴로 나타나자 盧씨와 3 정도 떨어진 곳에서지켜본 한 사진기자는 『진하지는 않지만 분명히 여성용 파운데이션 정도는 바른 얼굴』이라며 『초췌한 모습을 부각시키기 위해 그런 것같다』고 추측.
…전날 북한산 산행을 다녀온 전두환(全斗煥)전대통령은 이날 세간의 시선을 피하려는 듯 오전10시쯤 부인 이순자(李順子)씨와 함께 외출하는 등 무반응으로 일관.한 측근은 『외부에 행사가 있어 나갔다』고만 설명.全씨측 비서진은 이날 회견장면을 TV로 녹화했다는 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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