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주저없는 贖罪 결단 내릴 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노태우(盧泰愚)전대통령을 겪어본 이들은 흔히 그가 우유부단하다고 평한다.그에게는 「물태우」라는 별명이 붙어있다.
그런 그도 인생에서 세번 말그대로 결단을 내린 적이 있다.어떤 것은 악(惡),어떤 것은 선(善)이었고 어떤 때는 능동적,어떤 때는 수동적이었지만 모양은 어쨌거나 과감성의 실현이었다.
첫째는 63년 그가 대위때였다.그는 전두환(全斗煥).권익현(權翊鉉)등 육사동기들과 함께 김종필(金鍾泌)등 부패한 8기생그룹을 체포하려는 거사를 도모했다.이른바 7.6사건이다.누설로 불발됐지만 결의만큼은 청년장교의 기개다웠다.
둘째는 12.12다.그는 전방을 지키는 9사단병력을 쿠데타에동원했다.일이 성공한후 작가 천금성(千金成)씨에게 그는 『실패할 경우엔 자살하려고 권총의 실탄수를 세기도 했다』고 토로했었다. 셋째는 87년 직선제싸움을 치러낸 것이다.그는 사실 처음엔 겁을 먹어 6.29를 주저했다.그랬지만 싸움판에 뛰어들고 나서는 호남유세에서 주먹만한 돌이 날아와도 연단을 지켰다.그장면에서 「물태우」의 모습은 없었다.
그 결단으로부터 8년이 흐른 지금,그는 아마도 생의 마지막 것이 될 또 하나의 결단을 내려야 하는 운명에 처해있다.
그는 『몰랐다』고 발뺌했고 측근들은 『이현우가 몰래 챙긴 건지 모르겠다』고 둘러댔지만 결국 드러난 전주(錢主)는 그였다.
국민의 분노는 천장에 다다랐다.
그가 집권을 도와준 김영삼(金泳三)대통령도,그의 전임자인 전두환 전대통령도,민자당도,구여권도,야당도 모두 그의 손을 놓고있다. 계좌.돈세탁.차명.가명.통치비자금.관리인등 온갖 용어가어지럽게 춤추지만 사안은 그야말로 간단하다.그는 청와대를 나오면서 개인의 영원한 부귀를 위해 거액을 속곳에 숨긴 것이다.
그는 지금 한국의 마르코스가 되고 있다.
모든 상황이 이러할진대 그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그와 대리인들은 지금도 『정치자금 운운…』하며 정상참작을 협상하려 하고있다.「87년의 노태우」답지 않은 일이다.
그는 주저없이 마지막 결단을 향해 걸어나가야 한다.
그것은 흰옷을 갈아입고 땅에 엎드려 국민의 결정과 용서만을 석고대죄(席藁待罪)하는 일이 아닐까.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