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따라세월따라>경북 청도-씨 없고 당도높은 홍시 마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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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경북 청도읍에서 비구니로 유명한 유서깊은 사찰 운문사로 찾아가는 20번 국도변.단풍이 붉게 물들기 시작한 이곳에는 요즘 알이 굵고 붉은 빛으로 물든 홍시가 주렁주렁 매달린 감나무가 유난히 눈에 띈다.
전국에서 나오는 감 10개중 1개는 청도감일 만큼 청도군은 감골 마을로 통한다.청도에서는 이맘때면 감따는 일손이 바빠진다. 청도 홍시는 그 생긴 모습이 납작해 반시(盤枾)로도 불린다.청도 반시 100개중 99개는 틀림없이 씨가 없고 찰지며 당도가 높아 상인들이 다른지역 홍시보다 한금 더 쳐주는 특산물이다. 특히 청도군매전면은 청도 감나무가 가장 많이 몰려있고 홍시 맛이 탁월해 이름난 지역.청도읍에서 곰티고개를 넘어 20번국도변 매전면하평리에는 농가를 삥둘러싼 감나무들이 즐비하다.하평리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이곳에서 매년 감을 수확해 온 이승수(68)씨는 이방인의 접근도 모른채 농가 마당에서 부인 김순연(64)씨와 홍시를 잰 손놀림으로 종이박스에 포장하고 있다.홍시가 서리를 맞으면 맛이 떨어져 값이 덜 나가기 때문에 수확을서두르는 기색이 완연하다.서두르면서도 포장 순간마다 정성을 들이는 부부의 손길이 딸을 시집보내는 부모의 모습처럼 진지하다.
4년전 6남매를 모두 출가시켜 도회지로 내보내고 부인과 단둘이 살고있다는 그는 그동안 빠듯한 농가 가계를 꾸려오는데 감농사가 효자 노릇을 단단히 했다고 말한다.
집 둘레에 30여년생 50여주 감나무 밭을 가지고 있는 이씨가 매년 거둬들이는 감 수확량은 300상자 내외.
이씨는 『홍시중에 꼭다리에 벌레먹은 충시(蟲枾)맛이 최고인디서울 사람들은 고것을 모른다』며 연신 벌레먹지 않은 단단한 홍시를 골라 상자에 넣고 있다.홍시를 먹는 사람들이 말끔한 홍시를 원하기 때문에 예전에는 안뿌리던 농약도 한두 차례씩 뿌리게된다는 것이다.
도로를 달리는 자가용들이 많아지면서 지나가는 길에 청도 홍시를 사가기 위해 농가를 직접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도 청도의 달라진 풍속도다.
청도를 찾은 사람들이 우연히 청도 홍시에 씨가 없는 것을 발견하고 신기해하는 것도 농민 들이 그만큼 자주 경험하는 일이다.올해는 청도 홍시에 새로운 전환점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홍시1.5을 섭씨 영하 25도로 급랭시켜 냉동창고에 보관했다가 한여름에 「아이스 홍시」로 내놓는 계획이 추진되고 있다.
여름에 소비자들에게 내놓는 아이스 홍시는 지금 가격보다 2배이상으로 팔릴 것이라는 게 진상기 청도군청 공보계장의 희망섞인전망이다.가을 허공을 붉게 물들인 홍시가 산 높은 고장의 단풍과 어우러져 깊어가는 가을의 맛을 더욱 깊게 느낄 수 있는 곳이 바로 이곳 청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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