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청 기생 황진이' 추정 공문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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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 황진이로 추정되는 '진이(眞伊)'라는 기생 이름이 적힌 조선시대의'송도관편관청공문서'.

조선 중종때의 명기(名妓) 황진이(黃眞伊)로 추정할 수 있는 기생의 이름이 적힌 조선시대 공문서가 발견됐다.

한국방송통신대 박태상(국문학) 교수는 25일 "황진이가 관청에 속한 기녀(官妓)였음을 밝혀주는 최초의 공문서를 입수했다"며 갑술년(甲戌年) 6월에 작성된 것으로 기록된 '송도관편관청공문서(松都官編官廳公文書)'를 공개했다. 길이 3m 가량의 두루말이 형태 필사본인 공문서에는 모두 106명으로 구성된 송도관(오늘의 개성시청)의 편제가 담겨 있고, 24명의 관비(官婢)의 이름이 등장한다.

박교수는 "기생들 이름 중에 '진이(眞伊)'가 보인다"며 "성(姓)은 나와 있지 않지만 서경덕(徐敬德), 박연폭포와 함께 송도삼절(松都三絶)로 꼽힌 황진이가 확실해 보인다"고 주장했다. 지금까지 황진이의 존재는 이덕형의 '송도기이', 유몽인의 '어우야담' 등 주로 야담을 통해 전해졌었다.

박교수는 공문서가 작성된 갑술년을 1574년으로 추정했다. 학계에서는 서경덕 등 황진이가 만났던 남성들의 생몰연대로 미루어 기생 황진이의 전성기를 1530년대 후반에서 40년대 초반까지로 보고 있다. 문서 속의 진이가 진짜 황진이라면 '할머니 황진이'인 셈이다.

박교수는 문서 작성연도를 1574년으로 보는 근거로 "18세기 초반 자료 등 조선 후기로 갈수록 기생 등급 구분이 세분화되는데 문서에서는 구분없이 관비라고만 적고 있어 작성 연대가 상당히 올라가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박교수는 또 "송도관원 수가 106명에 불과한 것은 연산군의 폭정 이후 중종이 개혁정책을 펴면서 수를 줄였기 때문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박교수는 '송도관편관청공문서'를 다음주 출간되는 자신의 저서인 '북한의 문화와 예술'(깊은샘)에 부록으로 삽입했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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