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일의 Inside Pitch Plus <61> 야구는 숫자가 아니라 사람이 한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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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호 26면

14일 메이저리그 순위표를 보다가 눈을 비볐다. ‘쌍웅(雙雄)’ 보스턴 레드삭스와 뉴욕 양키스가 속한 아메리칸리그 동부의 순위 때문이었다. 1위에 올라 있는 팀이 레드삭스(24승18패)나 양키스(19승21패)가 아니라는 것에 우선 놀랐다. 그리고 그 팀이 만년 하위 탬파베이 레이스(23승16패, 이상 성적은 14일 현재)라는 데서 “이게 맞나?”라는 의심까지 들었다.

탬파베이는 1998년 창단 이후 10년 동안 딱 한 번 탈꼴찌에 성공했다. 2004년이었다. 그해 지구 다섯 팀 가운데 4위를 했다. 그 승률도 5할이 안 됐다. 나머지 아홉 시즌은 모두 5위. 최하위였다. 지난해에도 물론 5위였다. 그런 팀이 화려한 양키스, 지난해 월드챔피언 레드삭스를 제치고 지구 꼭대기를 점령했다. 눈을 다시 한번 비벼야 할 충격을 맞았다.

전문가들은 탬파베이의 성공 비결을 불펜의 안정이라고 평가한다. 6회 이후의 승부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진 현대 야구에서 튼튼한 구원투수진은 성적과 직결된다. 탬파베이 구원투수진의 변화는 베테랑 마무리투수 트로이 퍼시벌(38)의 리더십에서 비롯됐다. 그는 탬파베이 구원투수진을 하나로 뭉치게 했다.

그 비결 가운데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밥을 함께 먹는 것’이다. 탬파베이 구원투수들은 원정경기 때 오전 11시45분에 숙소 로비에 모여 밥을 함께 먹으러 가는 전통을 만들었다. 퍼시벌이 주도하는 문화다. 이 과정을 통해 구원투수들은 서로를 알고 이해하고 존중한다. 그리고 한곳을 바라본다. 구원투수 댄 윌러는 “투수는 누구나 혼자 마운드에 오를 수밖에 없지만 우리는 늘 모두 하나가 돼서 마운드에 오른다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그들의 일체감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는 의미다. 퍼시벌의 리더십이 만든 변화다.

만년 하위이자 30개 팀 가운데 연봉 총액 29위의 가난한 구단 탬파베이가 그런 ‘인간적인’ 변화로 성적 상승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다시 한번 ‘야구는 사람이 한다’는 걸 생각하게 된다. 숫자의 비중이 가장 큰 스포츠, 데이터가 진실로 통하는 종목 같지만 결국 팀의 성적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 누가(연봉 얼마짜리 선수, 기록이 어떤 선수) 하느냐보다 더 중요한 게 어떻게 하느냐(그가 진심으로 열심히 뛰느냐)는 거다. 최고의 기량을 지닌 선수들을 비싼 몸값을 주고 끌어 모은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리그 순위는 6개 팀 가운데 4위. 성적은 18승21패1무로 5할에도 미치지 못한다. 능력 있는 선수들을 모았지만 조화롭지 못하고 그 선수들이 하나로 뭉쳐 팀을 위해 뛰게 만들지 못했다. 리더십의 부재다.

지난해 한국시리즈 우승에 이어 올해도 레이스를 주도하고 있는 SK는 팀 타율을 어떻게 높일까보다 ‘왜 야구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통해 선수들의 자세를 바꾼 팀이다. 그들이 “우리가 지면 열심히 운동한 게 너무 아깝다”고 하는 말은 쉬워 보여도 깊은 의미가 있다. 이번 시즌 힘겹게 스타트한 KIA의 조범현 감독은 9승20패로 최하위이던 4일 “우리에게 필요한 건 단순함과 열정이다”고 말했다. 20승 투수나 4할 타자보다 더 절실한 게 선수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거라는 의미다. KIA는 7일부터 5연승을 거두고 최하위에서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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