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둥이 당선자들 마음에 野性 심을 것”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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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호 10면

정세균 의원과의 인터뷰는 15일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이뤄졌다. ‘적이 없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던 그이지만 이날 모습은 많이 달랐다. “현 정부의 실용은 사이비 실용”이라며 목소리를 높이는 그에게서 야당의 투쟁 전사들을 이끌겠다는 강한 의지가 느껴졌다.

민주당 대표 꿈꾸는 男과女 정세균 의원

-왜 본인이 당 대표가 돼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아직 우리 당에 통합 후유증이 남아 있어요. 화학적 결합을 해서 완벽한 민주당이 돼야 하는데 당 하부구조가 아직 튼튼하지 못해요. 국민과 소통하고 핵심 지지층의 요구를 제대로 반영하는 당을 만드는 것이 중요한 시점인데 제가 제일 잘할 것 같아요(웃음).”

-당 대표가 되면 어떻게 당을 끌고 나갈 계획이신가요.
“이번에 당선된 면면을 보면서 과거 열린우리당의 단점이 너무 완벽하게 사라질 것이라고 걱정하는 사람이 많아요. 당이 좀 다양하고 자유분방해야 생명력도 있는데 (당선자들이) 너무 순둥이들이에요. 중도 개혁주의자만 있어 야성(野性)이 부족하다는 염려죠. 이런 상황에서 50년 정통 민주정당이라는 정체성이 소수의 당선자에게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당선자들이 이 큰 흐름에 들어오도록 하는 것이 차기 당 지도자의 몫이 될 것입니다.”

-81석 가지고 과반인 여당을 견제하려면 실력 저지 같은 물리력도 동원하는 건가요.
“그건 최후의 방법이지요. 시대가 바뀌었는데 투쟁의 양상도 바뀌어야 하지 않겠어요. MB(이명박 대통령)한테 과거로 돌아간다고 비난하면서 우리가 그렇게 할 수는 없어요. 물론 다른 야당과도 힘을 합치겠지만 숫자적으로는 어렵게 돼 있는 건 사실이에요. 국민과 소통하면서 지지와 동의를 이끌어 나가야 합니다.”

-지난 총선을 어떻게 평가하세요.
“가장 안타까운 부분은 어떻게 인물을 자를지만 고민했지 더 좋은 인재를 찾는 일은 등한시했다는 것입니다. 비례대표도 절차나 인물 선정에서 옳지 않았어요. 아쉬움이 많습니다. 정당의 기본 역량은 인재에서 나옵니다. 2012년 대선을 위해 우리 당은 최소 5∼7명의 대통령 후보군 양성을 시작해야 합니다.”

-MB 정부가 초반부터 흔들리는 이유를 지적한다면.
“시스템의 문제라고 봅니다. 국회나 청와대·총리실, 각 부가 그냥 있는 게 아니에요. 다 역할과 필요성이 있어요. 예를 들어 총리실의 국무조정실장 자리는 온갖 부처 간 갈등을 조정하다 보면 과로가 겹쳐 원래 1년을 못 하는 자리예요. 그런데 지금 어떻습니까. 총리는 보이지 않아요. 총리한테는 자원외교나 하라고 하고 청와대가 그 기능을 쏙 뽑아갔습니다. 국가 경영은 회사처럼 단순하지 않아요. 청와대 수석이 밖에 나가 ‘좋은 것은 대통령이 다하고 우리는 욕만 먹느냐’는 얘기를 했다니 참 걱정스럽습니다.”

-쇠고기 논란도 시스템의 문제였나요.
“그렇죠. 그 정도 사안은 과거 같으면 경제정책조정회의를 거쳐 부총리 정도가 나와 발표했을 것입니다. 토론 과정에서 농림부는 ‘농민 때문에 안 된다’고 주장하고, 외교부는 ‘미국과 타협하기 위해 해줘야 한다’고 주장하고 격론을 벌이는 게 정상입니다. 그런데 이런 과정이 다 생략됐어요.”

-그러면 쇠고기는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정부가 힘들더라도 미국과 다시 얘기할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국민 정서상 그냥 넘어가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말씀을 들으니 18대 국회에서는 여야 격돌이 심할 거 같네요.
“MB 정부의 실용은 사이비 실용입니다. 고환율 정책만 봐도 그렇습니다. 제가 원래 무역하던 수출 전사 출신(쌍용그룹 상무)인데 환율 효과는 아주 일시적이에요. 원화가 약세를 보이면 금방 외국 바이어들이 물건 값 깎자고 압력을 넣죠. 공기업 민영화도 그렇습니다. 신문에 보니 가스공사·지역난방공사 등을 민영화한다던데 첫 리스트는 틀렸다고 봐요. 공공에 맡겨야 하는 서비스를 민영화하면 되돌릴 수 없기 때문에 신중해야 합니다.”

-개헌이나 FTA 비준 동의에 대해선 어떤 입장이세요.
“개헌은 18대 초기에 이뤄져야 합니다. 대통령도 약속했잖아요. 정치인들도 약속을 지키려는 노력이 필요해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근본적으로 못하게 할 생각이 있는 건 아니에요. 우리당 사람들도 조건부 찬성이 더 많아요. 하지만 FTA는 상대가 있는 것 아닙니까. 미국 의회는 전혀 검토도 안 하고 있는데 우리 국회만 덜컥 동의해 놓고 미국의 처분만 기다리면 웃음거리 됩니다. 대운하·금산분리 완화는 안 되는 것입니다.”

-총선 과정에서 탈당한 인사들의 복당 문제는 어떻게 보세요.
“우리 당은 당헌·당규에 따라 개별 심사해 처리하면 될 것입니다. 한나라당의 친박 복당 문제는 우리와 직접 관계없는 문제지만 참 원칙 없는 사람들이에요. 박근혜 전 대표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간 경위를 보면 일괄 복당이라는 게 과연 옳은 일입니까. 그걸 주장하고 있는 박 전 대표가 그동안 얘기한 원칙에 부합하나요. 공천한 사람이 낙선했다고 반드시 잘못된 공천이냐. 전 그렇게 보지 않아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추미애 당선인에게 뒤지는 것으로 나왔는데요.
“인지도 차이일 거에요. 제가 당내 경선에 나온 것이 처음이니까요. 관리형 이미지라는 말들을 자꾸 하는데 그동안 여당을 해왔으니 안정감과 신뢰감을 주는 게 중요했죠. 하지만 야당이 됐으니 새로운 모습을 보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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