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책갈피] 중국에서 덕치는 이상에 불과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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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이중톈 제국을 말하다
이중톈 지음, 심경호 옮김
에버리치홀딩스, 442쪽, 1만8000원 

“주관(州官)이 방화하는 것은 허락하지만 백성들이 등잔불을 켜는 것은 불허한다.”

정치제도를 중심으로 중국사의 흐름을 분석한 이 책의 한 대목이다.

백성을 소나 양으로 보고 관료는 이들을 돌봐야 한다는 의미에서 목(牧)이라 했지만 실제는 백성 위에 군림했던 관료주의를 지적한 말이다. 이를 보고 촛불문화제를 떠올릴 수도 있지 않을까.

『삼국지강의』『품인록』『제국의 슬픔』 등으로 상당한 고정 독자층을 확보한 지은이가 정치제도를 키워드로 중국사를 분석했다.

독특한 해석과 유려한 문장이 그의 강점으로 꼽히는데 이번 책은 이전 저술과 조금 다르다. 중국 학계에서 그의 작업을 두고 희설(戱說·재미있게 각생한 이야기)이냐 정설(正說)이냐 하는 논란이 일었던 점을 의식한 듯 정색을 하고 묵직한 주제를 다뤘다.

이 때문인지 시각의 참신함은 여전하지만 읽는 맛은 전작에 비해 다소 떨어진다.

지은이는 중국사를 방국(邦國)시대, 제국시대, 공화시대 셋으로 구분한다. 방국시대는 서주(西周) 시대에서 진시황이 육국을 통일하기까지의 기간을 뜻하는데 봉건제를 바탕으로 한단다.

제국시대는 진시황이 진 제국을 수립한 이래 청나라가 멸망하기까지인데 군현제를 바탕으로 한 시기다.

공화시대는 신해 혁명 이후를 가리킨다. 책은 그 가운데 2000여 년 지속된 제국시대의 정치핵심을 ‘중앙집권’ ‘윤리치국’ ‘관원대리’로 요약하고 그 성립 배경·한계 등을 논한다.

그에 따르면 ‘제국시대’는 왕조만 바뀌었을 뿐 정치의 핵심은 그대로였다.

책임을 지지 않는 군주와, 이를 대리하고 권력을 나누는 관료층이 다툼을 벌였다. 태생적 모순을 지녔기에 제국은 멸망할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한다.

중국정치에서 덕치는 이상에 불과했고 법치는 민본사상이 없는 구호에 불과했으니 관치로 흐를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그는 이런 주장을 다양한 사례를 들어 흥미롭게 풀어갔다.

그렇다고 단순한 역사연구서는 아니다. 정치론으로도 읽힌다. 책 뒷부분에 공화의 요소는 민주·공화·헌정이라며 이를 설명하고 ‘처방’을 담은 걸 보면 중국사회를 향한 발언 같다.

장졔스의 국민당은 비판하면서 공산당은 우회적으로 다룬 듯한 인상을 주는 ‘현실적 한계’가 있긴 하지만.

김성희 고려대 초빙교수·언론학 (jaejae@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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