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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이 삼촌의 꽃따라기] 제주 암대극 … 바위틈에 핀 ‘화산섬 귀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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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항을 떠난 배는 놀러 가는 사람들로 북적댄다. 그 속에 다른 목적으로 섬에 가는 소년이 한 명 있다. 중년으로 접어든 나이지만 마음은 40년째 소년인 ‘중고 소년’이다. 그의 히스파니올라호는 카페리다. 저녁 무렵 섬에 바퀴를 내린 그의 애마는 시속 60km 이상을 달리지 못한다. 빠르게 스쳐 지나기에는 너무 아까운 풍경들이다. 천천히 달려 그가 도착한 곳은 첫날 밤을 지낼 성산 일출봉이다.


 다음 날 해보다 먼저 일어나 일출봉에서 떠오르는 해를 두 눈 가득 담는다. 곧바로 내려와 소년은 소원풀이에 나선다. 그의 소원은 검은 현무암 사이에 샛노랗게 핀 암대극을 카메라에 실컷 담는 것.

제주의 바다에 산호초가 있다면 물 밖에는 암대극이 있다. 다른 데서는 드물지만 제주에는 널린 바위만큼이나 많은 것이 암대극이다. 암대극이 암놈 대극이 아니라 바위틈에 피는 대극속 식물임을 알고 난 뒤 소년은 이제나저제나 바다를 건너는 꿈을 꾸어왔다. 마침내 소년은 완도까지 280km가 넘는 길을 5시간 이상 달리고, 다시 100km가 넘는 바닷길을 3시간 이상 건넜다.

소년의 ‘보물지도’인 내비게이션이 섭지코지까지 안내한다. 에메랄드빛 바다 반짝이는 그곳에서 소년은 소원하던 암대극을 만난다. 처음 보는 이 꽃, 아름답다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다. 최고다. 예뻐 죽겠다. 자생지에서 만나니 더욱 그렇다.

소년은 눈으로 꽃을 살피기에 바쁘다. 카메라는 뒷전이다. 현무암 사이에서 대체 무엇을 양분 삼아 피었을까? 꽃은 바위틈에 피어 아무도 탐할 수 없기에 더욱 빛난다. 대개의 대극속 식물에 비해 암대극은 크고, 꽃이 필 때 총포엽이 노란색을 띠어 귀족적인 분위기도 느껴진다. 이것도 꽃이냐고 할 사람도 있을지 모르나 내 눈엔 이만한 꽃도 흔치 않다.

제주는 암대극의 낙원이다. 디카 메모리를 실컷 배불린 뒤 바닷가를 누비며 보니 흔하디 흔하다. 현무암이 있는 바닷가라면 어디나 있다.

바닷가 식물뿐이 아니다. 말똥과 나뒹굴며 피는 피뿌리풀, 지나는 사람들 옷의 실밥을 걸어 당기는 실거리나무의 샛노란 꽃, 착한 사람이 아니면 볼 수 없을 만큼 작은 비자란도 덤으로 감상할 수 있다.

이틀 밤의 이야기를 가슴에 담고 사흘 낮의 이야기를 메모리에 담아 소년은 발길을 돌린다. 때가 되면 그 이야기들도 꽃이 되어 피어나리라.

돌아오는 배 안, 곤한 잠 속에 암대극이 나타나 살랑살랑 춤을 춘다.

  글·사진 이동혁 http://blog.naver.com/freebow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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