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고송' 작곡가 김연정씨 "자식두고 집나온 엄마 심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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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 ‘되고송’이 있었다. 창조주의 손을 떠난 되고송은 ‘노처녀편’ ‘프로야구편’ ‘군대편’ ‘공처가편’ 등으로 무한 변신하며 인터넷 세상에 넘쳐나고 있다.

남녀노소 누구나 흥얼거리게 된 국민송의 작곡가 김연정(33)씨. 그녀를 만나러 간 김에 국민송이 탄생한 역사적 현장, 그녀의 작업실을 구경하고 싶었다. 아쉽게도 궁금증은 풀지 못했다. 대신 ‘되고송’을 떠나보낸 후 아픈 가슴을 달래야 했던 새 작업실에서 그녀를 만났다. 그녀는 자신을 자식(되고송) 버려두고 집나온 엄마’라고 말했다.

기자: 되고송 인기가 대단하다. 하늘을 나는 기분이겠다.

김씨: 사람들이 그렇게 물어볼 때마다 속상하다.

의외의 답변에 뒷통수가 얼얼하다. 모르면 간첩 딱지 붙이면 되는 되고송이다. TV, 컬러링, 케이블 등으로 영토를 넓히며 전국민을 지배하다시피하고 있는 '되고송'이다. 당연히 작곡가는 억대 방석에 앉아 따땃한 나날을 보낼 것 같았는데 말이다.

기자: 아니 왜? 부자가 됐을 것 같은데.
김씨: ‘되고송’이 방송을 타면서 많은 분들이 사랑해주시니까 수입이 짭짤할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되고송을 만들 때 난 월급쟁이였기 때문에 특별 수당 없이 딸랑 월급만 받았다. 지난 1월에 대행사로부터 풀송(full song)을 제작해 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회사를 그만두기 전이었다. 어떻게 할까 고민했지만 주어진 일이었기 때문에 무조건 열심히 했다. ‘되고송’이 온에어(On Air)가 된 것은 회사를 나온 뒤였다.

광고음악업계에선 작곡가가 음원 소유권을 갖기 어렵다고 한다. 저작권협회에 음원을 등록하면 되지만 그렇게 되면 여러 불이익이 따르기 때문에 선뜻 나서는 이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제작비는 편당으로 책정, 광고주가 작곡가 소속회사에 지급하기 때문에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별도의 수당을 받을 수 없다. KBS 징글(jingle)을 작곡해 매해 수익을 올리고 있는 가수 박진영의 경우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다. 광고음악에서 파생되는 여러 수익도 작곡가의 손에까지 오기는 어려운 형편이란다.

기자: 단순히 돈 때문에 속상한 건가?
김씨: 당연히 아니다. 돈이야 지금부터라도 벌면 된다. ‘되고송’은 참 힘들게 만든 것이다. 지금 내 상황은 어쩔 수 없이 자식을 버리고 집을 나온 엄마 정도? 사정이 있었다. (이유에 대해선 오프더레코드를 요구했다) ‘되고송’을 가지고 군가ㆍ힙합ㆍ트로트ㆍ일렉트로닉 등 여러 형태로 재창작하고 싶었다.

기자: 되고송이 어떻게 세상의 빛을 보게 됐나?
김씨: 1월에 대행사로부터 ‘희망의 메시지를 주면서 남녀노소가 쉽게 따라부를 수 있는’ 컨셉트의 새로운 캠페인 노래를 의뢰받았다. 당시 경쟁사는 한창 재미를 보고 있었다. ‘띠리~’하면서 시작하는 광고였다. 여러 광고대행사가 PT에 참여했지만 우리가 따냈다. 구정때 쉬지도 못하고 며칠을 꼬박 밤새 ‘되고송’을 내놨더니 대행사측에서 새마을 운동같다며 ‘킬’을 시켰다. 그래서 다른 컨셉으로 6~7개 정도를 만들었지만 다들 '되고송'이 입에서 맴돌았다며 그것이 좋다고 하더라. 카피라이터와 대꾸 형식으로 맞받아치는 가사를 쓰면서 다듬어진 것이 지금의 ‘되고송’이다.

딱 10마디의 곡이다. 작업실에 종일 앉아 4분의4박자, 10마디에 들어갈 음표를 고민하고 또 고민했을 것이다. 참을수 없는 단순함 뒤에 그 무엇이 더 있을 것 같았다.

기자: 작업실에만 틀어박혀서 만든 건가?
김씨: 작업실에서 밤을 샌 것은 맞지만 기초적인 영감은 출근길에서 따왔다. 버스에 앉아있다 보면 많은 소리가 들린다. 할아버지 기침소리, 아줌마 수다소리, 아기들의 옹알이 소리, 이번 정류장은 어디입니다 이 소리까지. 이것들을 모두 짊어지고 와서 작업실에 풀어놓았다. 서민적인 태반에서 만들어진 곡이 ‘되고송’이다.

여기서 잠깐, 또 하나의 ‘되고송’ 에피소드가 있다. ‘생각대로 하면 되고~’ 풀송이 끝난 후 일렉트로닉한 "생각대로 T"하는 목소리의 실제 주인공은 바로 김씨. 시안을 즉흥적으로 불렀더니 "그거 좋은데"라는 반응이었다. 번뜩이는 순발력을 타고난 것일까.

기자: 원래부터 예술적 기질이 있었나?
김씨: ‘고슴도치’인 엄마의 말을 빌리자면 신동인 줄 알았다고 한다. 네살 땐가 피아노를 보더니 가서 이것저것 치더란다. 그 이후로 피아노는 내 삶의 청량제였다. 시험기간이 끝나기만 하면 피아노로 스트레스를 풀었다. 음악은 휴식이었으니까. 어떤 음악을 들으면 그냥 무작정 따라 쳤다. 하지만 음악으로 밥 벌어 먹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아마도 이것이 내 운명이었나보다.

기자: 지금은 음악으로 밥 벌어 먹게 됐다.
김씨: 대학때 연합합창동아리 ‘쌍투스’에서 창작곡을 쓰면서 활동을 했다. 그냥 무작정 좋았으니까. 대학 4학년때 지인의 권유로 ‘블루캡’이라는 곳에 들어가 첫 직장 생활을 했다. 취미가 일이 되니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음 하나하나를 객관적이고 분석적이게 바라보게 됐다. 직업상 음악적 편식은 절대 용납이 안되니까. 취미가 없어진 건 안타깝지만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돼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녀의 손을 거쳐간 광고음악은 무려 1500편. 맥도날드, 코카콜라, 아디아스, SK엔크린 빨간모자, 네이버 자막광고, X캔버스, 매가패스, KB국민은행, 현대카드, 우리투자증권 옥토랩 등 귀에 익은 것들만 추려봐도 끝이 없다. 풀송ㆍBGMㆍ징글 등 모든 분야를 섭렵했다.

기자: 경력을 보니 굉장히 다양하다.
김씨: 나에겐 작업한 모든 곡들이 추억이다. 10마디든 음표 2개든. 예전에 만들었던 곡들을 한번씩 꺼내들으면 당시 날씨, 내 기분 상태, 처했던 환경 등등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한권의 사진첩이 되는 것이다. 길을 걷다가 우연히 내가 만든 곡이 나오면 그때가 생각나면서 혼자 웃곤 한다. 아련한 추억 속의 헤어진 애인 같은 느낌.

기자: SK텔레콤과의 인연이 특히 깊다.
김씨: 텔레콤의 역사를 함께 했다. SK텔레콤과의 인연은 2001년 스피드011부터 시작됐다. 준, 모네타, 네이트, 레인보우, 생활백서시리즈, 사람을 향합니다, 완전정복 시리즈, 이번에 되고송까지 이어졌으니까 내겐 꽤 의미가 깊고 애착이 간다. 8년 가깝게 SKT브랜드를 만들었지만 핸드폰 하나 안주더라. 실무진과만 일해 윗 분들은 잘 모르겠지만. (웃음)

기자: 앞으로의 계획은?
김씨: 제대로 된 영상음악 전문업체를 6월초 오픈하려고 한다. 지금까지는 광고음악만 다뤘는데 앞으론 영화나 애니메이션으로 폭을 넓히려고 한다. 아, 그리고 또 하나. 후배들은 좀더 나은 환경에서 좋은 작업을 할 수 있도록 무언가를 하고 싶다.

글ㆍ사진ㆍ동영상촬영=이지은기자 편집=이수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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