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는 말뿐 시민들무표정-本社한경환특파원 사라예보 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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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휴전이 임박한 보스니아 수도 사라예보의 새벽 찬공기는 무척이나 신선하게 느껴졌다.희뿌연한 안개속에서 30여만명의 시민들이3년6개월째 고립된 채 살아가고 있는 고립도시 사라예보가 드디어 기자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기자는 세르비아계에 의한 26시간의 억류를 포함해 60여시간만인 9일 오전 사라예보에 도착했다.
그렇게도 접근을 허용하지 않던 고립도시 사라예보에 발을 디뎠다는 흥분감에 젖기도 잠깐,기자는 멀리서 들려오는 총성과 추위와 배고픔에 떨고있는 시민들의 모습에 제정신을 차렸다.
평화협정의 발효(10일 0시)를 목전에 두고있는 도시답지 않게 사라예보 시민들은 기쁨과 흥분보다는 정적과 간간이 들려오는총성속에서 무척이나 지치고 냉정한 모습이었다.
『가스 공급도 재개되지 않고 있다.투즐라등에서는 여전히 전투가 계속되고 있다.
아직도 평화는 말 뿐인데 우리가 흥분해야 할 이유가 있는가』(사라예보 시내 호텔에서 만난 이즈만(32).) 사라예보에 도착할 때까지 갖은 고초를 겪으며 전쟁의 상황을 직접 목도했던 기자는 이즈만의 냉정함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기자가 사라예보로 출발한 것은 지난 7일이었다.
보스니아 회교계와 사라예보를 연결해주는 유일한 육로인 이그만루트를 택했다.
차량 2대가 간신히 피해우리가 흥분해야 할 이유가 있는가』(사라예보 시내 호텔에서 만난 이그만(32).) 사라예보에 도착할 때까지 갖은 고초를 겪으며 전쟁의 상황을 직접 목도했던 기자는 이즈만의 냉정함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기자가 사라예보로 출발한 것은 지난 7일이었다.
보스니아 회교계와 사라예보를 연결해주는 유일한 육로인 이그만루트를 택했다.
차량 2대가 간신히 피해나갈 수 있는 좁고 험난한 산길주변과계곡에는 차량들이 마구 나뒹굴어져 있어 전쟁의 참상을 소리없이고발하고 있었다.이따금 먼 산에서 저격수들이 쏘아대는 총격소리가 아연 긴장감을 더해준다.
가파른 산길을 가까스로 빠져나오자 멀리 사라예보 시내가 어슴푸레 시야에 들어온다.
얼마전 재개된 공항의 안전확보를 위해 요소요소에 지뢰를 매설했기 때문에 야간에는 통행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사라예보를 눈앞에 두고 할수 없이 다음날을 기다려야 했다.회교계 마을인 부트미르의 한 민가에서 밤을 지낸 후 기자는 사라예 보를 향해 다시 차를 몰았다.
이그만 산을 내려와 공항 검문소를 통과해 500여를 지나자 또 하나의 검문소가 나왔다.
10여대의 민간 차량들이 이 검문소를 통해 들어왔다.무심코 이 차량들을 따라 달리자 이번에는 갈래길이 나왔다.거리에 표지판이 있을리 만무하다.보랏빛 경찰 복장을 한 사람들에게 사라예보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하느냐고 물었다.이들은 앞 서 갈테니 따라 오라고 했다.
2㎞여를 달리는 동안 한 마을을 지나게 됐다.이때까지도 기자는 이곳이 세르비아계 마을인 일리자인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저 사라예보로 가겠거니 생각한 것이다.이들이 안내한 곳은 한 경찰서였다.
순간 일이 잘못돼 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회교지역인지,세르비아계 지역인지 물어봤으나 웃기만 할 뿐 앉아서 기다리라고 했다.3~4시간이 지나도 아무런 조치가 취해지지 않아 갑자기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옆의 경찰들이 가지고 온짐을 차에서 내려놓으라고 했다.그러더니 몸 수색까지 벌였다.
두어시간 지나 민간복장을 한 경찰 한 명이 대기실로 들어왔다.다행히 영어가 통해 우리 입장을 설명하자 『당신들은 큰 실수를 저질렀다』고 했다.『지금은 전쟁중이다.아무도 다른 사람들의말을 곧이 듣지 않을 것』이라며 겁을 주었다.
오후 7시가 돼서야 정보책임자로 보이는 사람이 이곳에 머무르게된 경위를 조사했다.사실대로 말했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감시경찰과 동행해 호텔에서 하루를 묵고 이튿날 아침 다시 경찰서에 와 두시간여를 기다렸다.마치 2년이 지난 것 같았다.드디어 경찰 책임자가 우리를 불렀다.조사한 물품중 카메라.녹음기등은 압수했으며 다행히 돈과 기타물품은 돌려 주었 다.사라예보로 가도 좋다는 것이었다.26시간만에 풀려난 것이다.
사라예보에 도착해 이 사실을 다른 기자들에게 말했더니 『당신들은 정말 행운아』라고 했다.누가 당신들의 생명을 보장하겠느냐며 생환을 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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