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1만8000쪽 핵 문건 미에 제공 … 미국, 테러지원국 해제 기정사실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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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분석 북핵 문제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무엇보다 북한이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북한은 1990년 이후 영변 5㎿ 원자로의 운행기록과 연료봉 생산시설, 방사화학시설, 재처리시설 등 관련 시설의 기록들을 8일 방북한 성 김 미 국무부 과장에게 제공했다. 비밀리에 핵 활동을 추진해 온 북한이 이 기록을 내 준 건 이례적이다. 이 기록에 누락이나 결정적 하자가 없다면 저간의 북한 핵 활동 내용과 현재 보유 중인 핵 물질(플루토늄)의 총량, 핵무기나 폭발 장치의 보유 상황을 대부분 파악할 수 있게 된다.

북한이 제공한 기록의 양도 한·미 당국이 추정해온 수천 페이지 분량보다 훨씬 많은 1만8000쪽 분량이다. 정부 당국자는 “자료에 어떤 의미가 담겼는지는 분석해 봐야 알겠지만 성실하게 신고와 검증에 임하겠다는 북한의 의지는 확실해 보인다”고 말했다.

그 때문에 돌발 변수가 없는 한 북한의 핵 신고서 제출과 그에 따른 미국의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조치는 거의 기정사실로 굳어지는 분위기다.

우선 미국은 일단 원자로 운행기록 등을 분석하는 작업에 들어간다. 정밀 분석은 향후 검증 단계에서 꼼꼼히 할 일이며 이번에는 이들 자료가 향후 검증 및 폐기 협상의 자료로서 충분한지 여부를 최대한 이른 시일 안에 판정하는 게 목적이다. 하자가 없는 것으로 드러나면 북한과 미국은 동시 행동의 원칙에 따라 신고서 제출과 테러지원국 해제 작업에 들어가게 된다.

특히 북한은 영변 핵시설 가운데 냉각탑을 폭파하는 상징적인 이벤트를 계획하고 있다. 이 장면은 전 세계에 동영상으로 공개될 것으로 보인다. 늦어도 5월 하순 안에는 이 같은 작업을 마무리 짓고 6월 초 6자회담을 열어 본격적인 검증과 핵 폐기 로드맵을 짠다는 게 한·미를 비롯한 6자회담 당사국들의 목표이자 기대다. 성 김 과장은 10일 오전 11시 판문점을 통해 서울로 돌아와 한국 당국자들에게 방북 협의 결과를 설명할 예정이다.

◇검증에 총력 기울이는 미국=숀 매코맥 국무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북한이 플루토늄 관련 자료를 미국 측에 넘긴 사실을 밝히고 이를 수주에 걸쳐 자세히 검증할 방침임을 강조했다. 매코맥 대변인은 “방북 중인 성 김 과장이 북한의 플루토늄 프로그램과 관련된 ‘상당수’ 자료를 가지고 올 것으로 안다”며 “우리는 앞으로 수주 동안 이들 문건의 중요성을 파악하고, 아주 세밀하게 이 과정을 끝마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들 문건이 (북한의) 핵 신고 과정에서 어떻게 작용할지와 관련해 3가지 최우선 순위는 검증, 검증, 검증”이라고 검증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문건이 영변 원자로의 가동 기록을 포함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플루토늄 프로그램과 관련 있다는 것 외에는 언급하지 않겠다”며 “북한이 제공한 문건 정보는 6자회담 당사국들과 긴밀히 공유하고 협의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예영준 기자, 워싱턴=강찬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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