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어린이책] 문제아들아 ~ 털보 선생님이 기 팍팍 살려주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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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잘한다 오광명
송언 글, 윤정주 그림
문학동네
104쪽, 8800원
초등 저학년

교실 안에서 개구쟁이·장난꾸러기는 설 자리가 없다. 천덕꾸러기·골칫덩이로 낙인 찍히는 건 시간 문제다. 장점을 찾아 곱게 지켜봐 줄 어른이 드물어서다. 그 사이 아이들은 차츰 동심을 잃고 기가 죽는다. 초등 교사인 저자가 쓴 이 책은 이 세상 모든 교실의 말썽쟁이들을 향한 따뜻한 응원가다. 칭찬에 목말랐을 ‘문제’아이들에게 책 제목대로 “잘한다”란 추임새를 넣어준다. 이야기는 가볍고 유쾌한데, 뒷맛은 숙연한 책이다.

주인공 오광명. 2학년 3반의 명물이다.

“선생님, 오광명 걔 되게 말썽쟁이예요.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는데요, 선생님 말씀 안 듣고, 날마다 공부 안 하고, 아무 아이하고나 싸우고 그랬어요.”

담임인 털보 선생님이 학기 초 아이들에게 들은 ‘첩보’다. 털보 선생님은 일러바친 아이에게는 고자질한다고 혼내는 대신 “그래, 고맙다. 오광명을 조심하마”라며 기를 세워줬다. 또 오광명에게는 “오늘부터 선생님이 말썽쟁이 광명이랑 친구해야겠다. 괜찮지?”라며 덥썩 끌어안아줬다.

그런 훌륭한 선생님 밑에서 광명이는 개과천선했을까. 어림없는 소리다. 광명이는 여전하다. 앞니 빠진 임진수랑 말다툼하다 주먹질을 해댔고, 김동명과는 학종이 따먹기를 하다 티격티격 싸웠다. 또 반장 황솔민과 싸우다 얼굴을 꼬집어 상처까지 냈다. 이게 다 하루에 일어난 일이다. 그 날 털보 선생님과 광명이의 대화는 이랬다.

“광명인 나중에 크면 뭐 될 거야?”“아빠 될 거예요, 씨.” “아빠? 그거 좋지! 그런데 광명이 아들이 학교에 가서 하루에 세 번씩 친구들과 싸우면 어떡할 거야?”“그냥 놔둘 거예요, 씨.”

광명이는 끝내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날의 에피소드는 이렇게 끝난다.

“오광명은 그 뒤로도 친구들과 자주 싸웠다. 황 반장과도 여러 차례 더 붙었으나, 승부는 쉽게 나지 않았다.”(43쪽)

억지 교훈이 빠진 자리. 생각할 여지가 더 많다.

겉으론 거친 듯해도 광명이 속은 초등 2학년생다운 여린 동심이 채우고 있었다. ‘공부하는 학교’란 글씨가 씌여있는 가운데 현관 대신 꼭 ‘즐거운 학교’라고 써있는 동쪽 현관으로 들어가는 광명이. 선생님이 친구들 몰래 준 사탕을 들킬새라 살금살금 학교를 빠져나가고, 좋아했던 짝꿍 김준이 전학을 가자 복도에서 엉엉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아이들의 천진함에, 교사의 사려깊음에 감동하며 읽다보면 어느새 ‘지은이의 말’이 나온다.

오광명은 실존 인물이었다. 작가가 6년 전에 만난 제자다. 지금은 중학교 2학년이 됐을 아이, 광명이가 2년 전 작가에게 불쑥 전화를 했다고 한다. “선생님. 저요, 그때로 돌아가고 싶어요. 초등학교 2학년 때 말이에요. 지금은 학교 다니고 싶지 않아요”라며 슬픈 목소리를 풀어놨다니, 마음이 짠하다.

말썽쟁이들에게 학교는 그렇게 녹록지 않은 공간이다. 선생님의 사랑과 관심 속에 행복한 학교생활을 하는 주인공 오광명에 자신을 대입시키며 대리만족을 하는 시간은 그래서 더 유용하다. 이 책은 지난해 출간된 『멋지다 썩은 떡』(문학동네)의 연작동화 격이다. 『멋지다 썩은 떡』의 주인공 썩은 떡이 『잘한다 오광명』에도 등장해 광명이와 한판 싸움을 벌인다.  

이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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