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예술혼, 다시 타올라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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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하동철, Light 02-29 Yang, 2002,
캔버스에 아크릴, 200×200㎝

 그들이 돌아왔다. 작고 작가들의 추모전, 그들이 한국 현대 미술에 새긴 발자취를 기리는 자리다.

한국 현대 판화의 선구자, 배융(1928∼92)의 16주기전이 서울 통의동 진화랑에서 27일까지 열린다. 도쿄·부에노스 아이레스·밀라노 등 국제판화비엔날레에 출품하면서 현대 판화의 도입과 정착에 큰 역할을 한 작가다. 전시는 그래픽 디자인과 흡사한 모던한 초기작부터 74년부터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찍어낸 도회풍 판화, 말년의 먹물 번지듯 맑은 아크릴화까지 망라하고 있다. 꿇어 앉은 인간이 거대한 새와 마주하고 있는 91년작 ‘명상’ 등 말년의 판화는 작가의 자기고백처럼 읽힌다. 58년부터 췌장암으로 사망한 92년의 작품까지 80여 점이 나왔다. 오광수 전 국립현대미술관장은 “배융은 단순한 한 사람의 판화가로서보다 한국 현대판화의 개척이라는 사명감을 지고 미답의 현대판화를 정립하는 선구적인 역할을 다했다”고 말했다. 02-738-7570.

서울 신림동 서울대미술관에서는 하동철(1942∼2006) 전 서울대 교수의 2주기 추모전이 20일까지 열린다. 그는 77년 미국 유학길의 비행기에서 파란 하늘에 비치는 햇빛의 조화에 영감을 얻어 빛을 주제로 한 판화를 제작하기 시작, ‘빛의 작가’라는 별명을 얻었다.

작품은 일단 크기로 압도한다. 2m 가량 캔버스에 얇게 칠한 아크릴 물감이 튀어나올 듯 착시를 유발한다. 또한 실에 먹물 묻혀 튕겨낸 가는 선들이 화면을 지적으로 구획하고 있다. 그의 작품은 서울대 본부, 제주 신라호텔 등 건물 홀의 벽 그림으로 선호된다. 창가에 걸린 빛 그림은 통유리창으로 들어오는 진짜 빛과 어우러져 숭고미를 느끼게 한다.

생전에 그는 “나는 항상 신비한 빛의 환상 속에 있다. 그 빛은 환상이라기보다 내게는 오히려 하나뿐인 현실이며, 나는 그로 인해 내 존재를 인식할 수 있게 된다”라고 말했다. 평생 빛을 주제로 지적인 추상 작업을 해 온 고인의 65년부터 2006년까지의 회화와 판화 60여 점이 나왔다. 02-880-9504.

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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