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슨평결로 본 美 사법제도-진실 외면한 소송편의주의 만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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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美형사법의 기본 정신은 「추론 가능한 의문(Reasonable Doubt)」을 풀어나가는 것을 바탕으로 삼고 있다.
즉 용의자를 유죄에 처하기 위해서는 생길 수 있는 모든 의문을 해소해야한다는 뜻이다.
형사사건에서 입증책임은 당연히 검찰의 몫이다.
심슨 재판에서 검찰이 규명했어야할 가장 핵심은 살인 무기의 제시,그 무기와 용의자와의 상관성및 용의자가 살인사건 당시 현장에 있었다는 현장증명등이다.
이같은 의무 가운데 검찰이 이행한 것은 어느것도 없었다.
물론 검찰은 현장에서 수거한 혈액에 대한 DNA테스트등 간접증거들은 제시했다.그러나 배심원들은 이같은 증거를 결정적인 판단근거로는 삼지 않았다.
살인현장에 있었다는 간접증거만으로 살인행위를 저질렀다고는 볼수 없다는 판단에 근거해서다.
이토 판사가 평결전 배심원들에게 『유죄와 무죄라는 선상에서 오가고 있다면 이는 무죄로 추정해야한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洪성육 변호사(52.뉴욕)도 『이 평결이 결코 심슨이살인을 안했다는 의미는 아니다』고 해석하고 있다.『실제 무고한사람이 만의 하나라도 억울한 처벌을 당하게 될지 모를 경우를 감안해 1만분의1의 가능성마저 고려한다는 취지에서 이 같은 평결이 나왔을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그러나 이날의 평결은 이같은 취지에도 불구,적지않은 문제점을안고 있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우선적으로 꼽히는 것이 배심원들이 얼마나 객관성을 유지했느냐는 점이다.전문가들은 배심원들이 3시간여만에 결론을 내렸다는 것에 의아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다수의 의견을 통해 오판의 확률을 줄인다는 본래의 취지와는 달리 인종적인 문제등 편견이 개입할 경우 이를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것은 이 제도에 대해 근본적인 회의를 불러일으키게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이번 사건의 경우 증거에 있어서는 변호인측이 훨씬 불리했으나이른바 「꿈의 팀」이라고 불리는 노련한 변호팀은 인종차별문제에초점을 맞춤으로써 사건의 본질을 전환시키며 결국 승리를 낚아내는등 유전무죄(有錢無罪)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 했다.
아울러 실체적인 진실을 규명하기보다는 절차상의 하자를 꼬집어승소만을 꾀하려는 소송 편의주의도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대목이다. 사법제도상의 이같은 문제점들 외에 가장 큰 후유증으로 지적되는 것은 이번 평결이 흑백간의 갈등을 한층 심화시킬 것이라는점이다.흑인과 백인들은 이미 이사건을 둘러싸고 깊은 골을 드러내고 있다.흑인측이 인종 편견에 의한 기소라고 주 장하는데 대해 백인 역시 인종편견에 의한 평결이라는 인식을 숨기지 않고 있다. [워싱턴.LA=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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