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온 아르헨티나 카를로스 메넴대통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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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시리아系 이민 2세인 카를로스 메넴 아르헨티나 대통령(65)은 명문(名門)코르도바大 법대를 졸업한 후 변호사 활동을 하다가 지난 56년 페론黨에 입당,청년당원으로 정치수업을 시작했다.아르헨티나 북서부 라 리하오州에서 양조장을 경영 하는 부모 아래 태어난 메넴은 73년 고향 주지사 선거에서 압도적인 지지율로 당선,그후 본격적인 정치인의 길을 걸었다.
민정복귀로 복권한 후안 도밍고 페론 대통령이 74년 갑작스럽게 사망하고 이어 정권을 이어받은 부인 이사벨 페론이 76년 3월 군사쿠데타로 물러나면서 메넴은 정치범으로 몰려 5년간 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메넴은 망명했던 페론 대통령의 복귀를 지원하겠다는 각오를 나타내기 위해 그의 트레이드 마크처럼 된 구레나룻을 기를 정도로투철한 페론 추종자였다.
82년 포클랜드 전쟁에서 영국에 패배,군정이 무너지고 83년라울 알폰신 정부가 들어서면서 메넴은 정치활동을 재개,83년과87년 주지사에 연거푸 당선됐다.
89년 알폰신 정권이 국내경제 위기로 임기 6개월을 남기고 퇴진하자 메넴이 대통령선거에 도전,당선됐다.
당선 후 메넴은 알폰신 정권이 군사정권의 폭정(暴政)에 대한단죄(斷罪)를 시도하다 쿠데타 위협에서 헤어나지 못했던 경험을되풀이할 수 없다고 판단,군부와 화합하는데 노력했다.취임후 그는 군정인사들에 대한 대사면으로 軍의 반발을 누그러뜨렸으나 「군부 끌어안기」는 인권단체의 강한 반발을 사며 집권기간 내내 짐이 됐다.
이어 그는 취임초 연간 4천%에 달하는 물가를 태환(兌換)제도와 대규모 민영화를 골자로 하는 新경제정책으로 한자리로 잡았고,7%에 달하는 경제성장률도 달성,「성장과 안정」의 두마리 토끼를 잡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러한 성과가 올 해 5월 대통령 재선의 바탕이 됐다.
같은 시리아系인 부인과는 수년 전부터 불화설이 끊이질 않다가최근엔 이혼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지난봄 외아들을 헬리콥터 사고로 잃는등 가정생활은 비교적 순탄치 않았다.
〈李元榮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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