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전면 가로쓰기 앞으로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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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1945년 조국 광복과 함께 조선어학회가 최초의 한글 전용 가로쓰기 교과서 『한글 첫 걸음』을 펴냈다.일제 치하에서 빼앗겼던 한글을 새로 보급하기 위해 서둘러 만들어진 이 임시 국어교재를 미군정청이 교과서로 채택,1백만부 이상 배 포함으로써 교과서혁명.문화혁명이 시작됐다.
『거의 모든 인쇄물과 공문서가 온통 세로쓰기였던 상황을 생각하면 당시 초.중.고.대학생 모두 사용했던 한글교과서가 마침내가로쓰기로 만들어졌다는 것은 엄청난「사건」입니다.물론 오래 전부터 가로풀어쓰기를 주장해온 외솔 최현배 선생이 조선어학회를 이끌었던 사실을 생각하면 아주 당연한 일이기도 합니다만….』 한글학회 허웅 이사장은 그 이후 한문과 서예를 제외한 모든 교과서에 가로쓰기가 정착됨으로써 한글창제와 금속활자 발명에 버금가는 문자혁명이 일어났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발견된 최초의 가로쓰기 교과서는 1902년 「대한셩교셔회(大韓聖敎書會)」가 발행한 『산슐신편(算術新編)』.그후 아라비아숫자나 로마자 표기가 필수적인 산술 및 상업계 교과서들이 학습효과를 고려해 일부 가로쓰기로 만들어졌으나 일제시대엔 세로쓰기 교과서 일색이었다.
국어학자 주시경(周時經)선생은 이미 1914년 『말의 소리』에서,2대 문교부장(현 교육부장관)을 지낸 오천석(吳天錫)선생은 1934년 보성전문학교가 발행한 『보전학회논집』에서 각각 가로쓰기의 효율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세로쓰기의 대세를 거스르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어서 해방전 교과서와 그밖의 책들은 거의가 세로쓰기로 만들어졌다.심지어 조선어학회의 『한글』조차도 1932년 가로쓰기로 창간됐으나 1934년 세로쓰기로 후퇴했다가 1937년부터 다시 가로쓰기로 돌아가는 우여곡절을 거쳐야했다.
1948년 정부수립과 함께 문교부가 「문자정책에 관한 선결사항」을 공표함으로써 교과서 가로쓰기의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교과서 연구가 이종국(李鍾國.대전전문대 출판학과)교수는 조선어학회가 단행한 교과서 가로쓰기 원칙이 별다른 논란없이 그대로받아들여진 이유를 다섯가지로 설명한다.▲일제시대 교과서용 도서의 편집체제에서 벗어나려는 노력 ▲한글 전용에 대비한 새로운 교과서 체제 모색 ▲국어.한문.로마자의 혼용 내지 병용에 따른효율성 ▲영문과 국문의 대비조판 및 대역(對譯)할 경우의 효율적 처리 ▲세로쓰기보다 가로쓰기 인쇄물의 가독성(可讀性)이 더높은 점 등이 전문가들의 공감을 샀다는 것이다.
1961년9월 강령 제137호로 제정 공포된 정부 공문서 규정도 「문서는 한글로 띄워서 가로로 쓴다」고 못박음으로써 교과서에서 시작된 가로쓰기 원칙은 모든 공문서로 확대됐다.
1895년 현재의 교육부에 해당하는 학부(學部)가 「하루 빨리 국민 개명을 앞당기기 위해」 발행한 『국민소학독본』을 한국최초의 교과서로 볼 때 한국의 교과서 역사는 올해로 꼭 1백년. 『가로쓰기 교과서의 역사가 50년에 이른 시점에서 정보화혁명을 이끌면서 여론을 주도하는 일간신문이 전면 가로쓰기 시대에접어든 것은 크게 환영할 일』이라고 이종국교수는 반긴다.
〈金敬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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