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황세희의몸&마음] 어린이 성문제와 대비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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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어린이 성(性)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성범죄자뿐 아니라 음란물을 접한 상급 초등학생에 의해 자행된 성폭행은 실로 충격 이상이다. 천진한 미소와 영롱한 눈빛의 어린 자녀를 보며 성 문제를 걱정해야 하는 부모는 난감하다.

하지만 성에 대한 본능적 욕구와 수치심은 출생 때부터 뇌에 각인돼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그간 우리 사회가 어린이 성 문제를 쉬쉬하며 대비책을 소홀히 한 셈이다.

의학의 발달은 태아도 자위행위를 한다는 보고를 내놓고 있고 유아기 어린이가 성기를 자극하는 일도 드물지 않다. 물론 이때의 행위는 성욕 발산이 아니며 그저 우연히 신체 특정 부위가 자극되니 ‘재미있더라’는 경험을 반복하는 ‘단순 놀이’에 해당한다.

어린이가 남녀를 구별하는 시기는 네 돌 무렵이며 성에 따른 신체적 특징과 차이를 제대로 아는 것은 초등학교 1~2학년, 성욕을 확실히 느끼는 것은 청소년기다. 이 중 초등학생 시절은 성의 ‘잠복기’에 해당한다. 이 시기 어린이가 성기를 자극하는 행위는 ‘단순 놀이’와 본격적인 성행위(성적 흥분과 성욕 발산)의 중간 단계인 ‘자극적 놀이’다. ‘자극적 놀이’ 역시 우연히 성기를 자극받는 경험에서 시작한다.

예컨대 음란물이나 부모의 성행위 등을 접한 초등학생이 호기심에 따라하다 자위행위를 하거나 또래와 유사 성행위를 반복하는 식이다. 의학계에선 어린이의 성 관련 행위는 단호한 태도로 제재하는 것을 권한다.

어릴 때부터 성적 호기심이나 욕구를 맘대로 충족하도록 방치하면 자제력·성취도·학업능력 등이 급속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실제 이번 성폭력 사건 가담 어린이들의 학업 성적 등이 이전보다 현저히 나빠졌다고 전해진다. 제재 방법의 핵심은 놀거리 제공이다. 예컨대 성기 놀이를 하는 유아에게 장난감을 주면 하던 일을 금방 잊는다. 초등학생 역시 또래와 즐길 축구·야구 같은 운동이나 재미있는 놀이를 주선하면 성적 호기심을 비교적 쉽게 떨친다. 심심하고 자극 없는 상황에 처한 어린이일수록 성적인 관심이 커지기 때문이다.

연령별 성교육을 통해 성에 대한 본능적 호기심과 수치심도 적절히 해소시켜야 한다. 그래야 성폭력 피해도 줄이고 불의에 사고를 당해도 적절히 대처할 수 있다.

학대받은 어린이를 상담하다 보면 “누가, 어디를, 어떻게 때렸다”는 식의 신체적 학대는 분명히 밝히지만 성 학대에 대해선 유치원생조차 상담자와 친해지기 전엔 입을 열지 않는다. 이는 성에 대한 본능적 수치심이 얼마나 큰지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예다. 따라서 말귀를 조금씩 알아듣는 18개월부터는 신체 각 부위의 명칭을 알려 주고 세 돌이 되면 “너무 소중한 내 몸을 남에게 보여 주거나 만지게 하지 말라”는 사실을 반복해 주입시켜야 한다. 또 아이가 성 관련 질문을 할 땐 책이나 전문가 도움을 받아 연령에 맞는 해답을 줘야 한다.

오늘은 동심이 만개하는 어린이날이다. 무차별적인 성개방 환경에 무방비로 노출된 우리 아이들, 이들에게 가장 절실한 선물은 성적 유해환경으로부터 보호하겠다는 어른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사랑이다.

황세희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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