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대, 학과평가 나쁘면 정원 삭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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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동국대가 매년 학과별로 평가를 실시, 성적이 저조한 학과의 정원은 줄이고 성적이 좋은 학과는 정원을 늘리겠다고 밝혔다. 대학이 자체 평가를 통해 학과 정원을 가감키로 한 것은 국내에선 처음이다.

그러나 동국대 교수들은 “이른바 인기 학과만 살려놓겠다는 정책”이라며 강하게 반발해 논란이 일고 있다.

동국대는 1일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2009년부터 학과별 입학정원관리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발표했다.

우선 매년 일정 기준에 따라 모든 학과를 평가해 하위 15%에 속한 학과의 정원을 줄인다. 또 감축된 인원 수만큼 평가 결과가 좋은 학과 정원을 늘리게 된다. 동국대가 밝힌 학과 평가 항목은 ▶정원 대비 재학률(40%) ▶취업 및 진학률(25%) ▶입학 성적(15%) ▶교수 1인당 대학원 학생 수(15%) ▶입학 경쟁률(5%) 등 5가지다.

동국대는 이미 지난해 말 태스크포스(TF)를 구성, 지난 3년간의 평가 내용을 종합해 내년 정원을 조정할 학과를 선정했다. 이에 따라 지난달 28일 기계공학과·철학과·사회학과·물리학과·수학과 등 8개 학과에 36명의 정원 감축이 통보됐다.

새롭게 조정될 학과 정원은 5월 중 교육부에 2009학년 입학 정원을 신고할 때 반영된다. 동국대는 지난해 5월에도 독문학과·북한학과 등의 정원을 감축한 바 있다.

이명천 동국대 학사지원본부장은 “학과의 대외 경쟁력을 높이고 미래 지향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정책”이라며 “일시적 구조조정이 아니라 상시적으로 조정이 이뤄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동국대의 학과 구조조정은 지난해 2월 취임한 오영교 총장의 방침에 따른 것이다. 오 총장은 취임 당시 “입학 정원을 상시 관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교수들, “기초학문 죽이는 정책” 반발=동국대 교수회는 이날 성명서를 내고 “비교육적이고 불합리한 평가 지표에 의해 학과가 구조조정되는 것은 대학 전체를 망치는 일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재형(영화영상학과) 교수회장은 “대학 당국이 정확한 지표 제시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했다”며 “철학·물리학 등 인문·자연과학의 기본이 되는 학문이 이런 기준으로 도태된다면 더 이상 대학의 학문적 미래는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유행을 따라가는 학과만 살아남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철학윤리문화학부 철학 전공(철학과)은 지난해 30명에서 23명으로 정원이 준 후 이번에 또다시 감축 통보를 받았다. 한 철학과 교수는 “지난해 정원을 감축하고 학부로 통합한 지 1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또 줄인다는 건 무계획적인 정책이라는 사실을 실토하는 셈”이라며 꼬집었다.

이충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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