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브라운관속의 정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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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방송.연예인들이 대거 정치권으로 밀려들고있다.내년 총선을 앞두고 금배지를 달겠다는 인물들중 TV브라운관등을 통해 친숙해진얼굴들이 부쩍 늘었다.여당은 여당대로 야당은 야당대로 각자 필요에 의해 이들을 무차별적으로 영입하고있다.정치 권에 연예인 전성시대가 개막된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각 정당들은 이들을 「새로운 인물」이라는 포장과 함께 경쟁적으로 자랑하고있다.이런 현상들은 「그때 그 얼굴」들에 식상한 유권자에게 일단 참신한 이미지를 심어준다.정치에서 권위주의 냄새가 사라지고 일반인들이 쉽게 정치에 다가갈수 있 다는 점에서긍정적인 효과도 무시못한다.
그러나 왠지 불안하다.우리정치는 특정 거물정치인들에 의해 당의 정책과 노선이 좌지우지되는 인맥정치를 특징으로 하고있다.정책.노선 정도가 아니라 정당이 하루아침에 통째로 사라지고 생겨나기도 한다.일종의 후진국형 정치형태지만 그게 현 실이다.
이번에 정치에 입문하는 방송.연예인들은 어쨌든 아마추어들이다.정치현장 경험도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당연히 역량도 미덥지 못하다.
때문에 우리네 정치현실에서 이들에게 기성정치를 변화시키는 힘을 기대하기는 힘들다.무엇보다 특정인의 정치적 목적을 위한「액세서리」역할에 그칠 위험이 너무나 크다.게다가 연예인들은 인기를 먹고사는데 익숙하다.이들의 정치입문의 중요한「 빽」도 대중에게 인기가 있다는 점이다.그러나 인기는 정치인에게 유리한 필요조건에 불과하지 좋은 정치인의 충분조건은 아니다.
이들의 정치입문 과정만해도 그렇다.기성 정치인 또는 정당의 단기적인 정치적 이해가 우선 작용한 인상이 짙다.각 당은 이들의 정치적 식견이나 능력보다 표를 긁어모을 인기에 더 눈독을 들인 눈치다.
현대사회는 점점 복잡해지고 다양화되고있다.소신을 지닌 각계인사들이 소속집단의 이익을 대변하기위해 정치에 뛰어드는 것은 좋은 현상이다.그러나 최근 유행처럼 번지는 연예인의 정치입문은 총선에 임박한 기성 정치권의 필요에 의해 급조됐다 는 점에서 정치가 상업화.상품화된다는 지적을 하지않을수 없다.
지금 우리정치가 풀어야할 화두는 너무 거대하다.고질적인 지역주의도 깨야하고 정치인들의 원칙없는 변신도 고쳐져야한다.
연예인들의 정치입문을 지켜보며 국민들 사이에선 새 인물을 희구하는 기대의 한켠에 자칫 허무주의.냉소주의가 번질지도 모른다.무엇보다 문제를 외부의 힘에 의존하기보다 내부개혁과 자기혁신노력으로 해결하려는 기성정치인들의 대오각성이 시 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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