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꿈의여정 50년 칸타빌레] 57. 사랑이란 두 글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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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길옥윤씨의 반주에 맞춰 연습실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필자.

일상적인 감정 표현에는 인색하다 싶을 정도로 젬병이었던 길옥윤 선생도 음악에 있어서 만큼은 100% 솔직하고 순수한 사람이었다. 말 없고 내성적인 그가 유일하게 자기 감정을 드러낼 수 있는 수단이 바로 음악이었던 모양이다. 길 선생은 절대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노랫말로 나타냈다.

그래서 그가 만든 곡 중에는 자신의 감정과 기분을 고스란히 담은 게 많다. 특히 결혼 생활 동안 나와의 관계가 원만하고, 아무런 문제가 없을 때는 ‘해피송’이, 그리고 우리 사이에 어떤 먹구름이 끼거나 문제가 생기면 어김없이 ‘새드송’이 만들어졌다.

좋아해 좋아해 당신을 좋아해

저 하늘의 태양이 돌고 있는 한 당신을 좋아해

좋아해 좋아해 당신을 좋아해

밤하늘의 별들이 반짝이는 한 당신을 좋아해(하략)

경쾌한 리듬의 ‘그대 없이는 못 살아’는 분명 행복했던 우리의 부부 생활을 노래한 것이었다.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사랑의 감정도 노래를 통해서 만큼은 이토록 감미롭게 드러낼 줄 아는 길 선생이었다. ‘사랑이란 두 글자’ 역시 해피송이다.

사랑이란 두 글자는 외롭고 흐뭇하고

사랑이란 두 글자는 슬프고 행복하고

사랑이란 두 글자는 씁쓸하고 달콤하고

사랑이라는 두 글자는 차갑고 따뜻하고(하략)

언뜻 듣기에 사랑의 기쁨과 행복을 노래하고 있는 이 곡도 곰곰 되짚어 생각해보면 사랑이 올 때는 웃고, 사랑이 갈 때는 울 수밖에 없는 화려하면서도 동시에 쓸쓸한 두 가지 면을 함께 담고 있다. 길 선생이 만든 곡 중에 유일한 세미 트로트 ‘연인의 길’은 그의 외로움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곡이다.

길 선생은 가슴 깊은 곳에 근원적인 외로움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그 외로움 역시 음악으로만 표현했다. 그 외로움이 너무 깊어 음악으로도 해결되지 않을 때면 술이라는 도피처를 찾는 것이었다. 그러나 술은 결코 외로움을 달래주거나 덜어줄 수 없었다. 어쩌면 술에 취해 더더욱 자기 연민에 빠져들었을 테고, 그는 더욱 외로워졌을 것이다.

“준! 도대체 뭐가 그렇게 당신을 슬프게 하는 거예요? 당신이 만든 노래, 내가 부르는 노래가 만들 때마다 부를 때마다 이렇게 사랑을 받고 히트하는데. 이제 곧 우리 아이도 태어날 텐데 도대체 뭐 때문에 그렇게 날마다 술을 마시고, 또 왜 우는 거예요? 제발 속 시원히 말을 좀 해봐요!”

하지만 그는 입을 열지 않았다. 그까짓 술조차 자기 의지대로 끊지 못하는 길 선생이 한없이 밉고 원망스럽다가도 술에 취해 울다 잠든 모습을 보면 또 한편으로는 알 수 없는 연민이 느껴졌다. 그를 그토록 외롭고 서럽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기까지는 훨씬 더 긴 시간이 흘러야만 했다.

패티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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