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욱기자의‘경제로본세상’] 낙태 합법화의 딜레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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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낙태를 두고 논란이 많다. 낙태 건수가 많아 낙태 공화국이란 오명을 쓰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2005년의 경우 국내 가임기(15~44세) 여성 1000명당 낙태 건수가 29.8건으로, 일본의 두 배에 달한다니 그럴 만도 하다. 낙태 건수가 2005년 한 해 동안 34만 건이 넘는다는 연구 조사도 있다. 그해 태어난 신생아 43만 명의 80%에 해당한다. 낙태하지 않고 출산했더라면 세계 최고 수준의 저출산 국가란 오명도 같이 벗었을 수치다.

이렇게 낙태가 많은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게다. 낙태를 감기 치료쯤으로 생각하는, 낙태에 무감각한 사회 구조 탓도 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는 낙태가 ‘사실상 합법’이라서다. 실제로는 불법이지만 공권력이 전혀 단속을 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합법이라 착각하고 있다는 의미다. 낙태는 현행법상 불법이다. 낙태가 죄란 얘기다. 적발되면 산모는 1년 이하의 징역, 의사는 2년 이하의 징역형을 받는다. 강간에 의한 임신 등 모자보건법에서 인정하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만 처벌받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합법적 낙태는 전체의 5% 미만이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낙태 공화국이란 오명을 벗기 위해 일벌백계하자고 한다. 불법을 엄격히 처벌하자는 주장이다. 물론 그렇다. 법대로 하면 낙태 공화국이란 오명은 단박에 벗을 게 분명하다. 그러나 그게 간단치 않다. 일벌백계하면 다른 문제가 터져나온다.

미국은 1960년까지 모든 낙태가 불법이었다. 73년에야 전면적으로 합법화됐다. 그러자 가장 달라진 게 낙태 수술비용이었다. 낙태가 불법이던 시절에도 낙태 수술은 음성적으로 진행됐다. 한 조사에 따르면 당시 면허를 가진 의사의 수술비용은 5000달러. 그러나 73년 합법화되자 350달러로 급감했다고 한다. 산모들의 낙태 수술 후유증도 크게 줄었다. 불법일 때는 수술받은 산모가 연간 1000명 이상 사망했고, 35만 명 이상이 임신중절 합병증에 시달렸다. 합법화되면서 크게 줄었다.

경제학적으로는 지극히 당연한 귀결이다. 불법일 때는 시술하다 적발되면 의사면허증이 날아간다. 징역도 살아야 한다. 이런 위험수당을 다 얹어야 하기 때문에 수술비는 매우 비쌀 수밖에 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산모는 이런 돈을 낼 수 없다. 무면허 시술자를 찾아 나서는 것이다. 그러니 죽는 산모가 많아질 수밖에 없다.

그렇더라도 낙태에 대한 경제학적 연구가 낙태의 전면적 합법화를 주장할 수는 없다. 여성의 선택 권리와 태아의 살 권리 중 어느 것이 더 소중한지도 답변할 자격은 없다. 경제학이 할 수 있는 건 낙태를 불법화할 경우 어떤 사회적 문제가 일어날지에 대한 전망이다.

김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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