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상의 로봇 이야기] 인간이 되고 싶은 로봇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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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호 39면

2001년에 개봉된 스필버그 감독의 SF 영화 ‘A.I.(Artificial Intelligence)’를 기억하는 독자가 많을 것이다. 얼마 전 우연히 이 영화를 다시 보게 됐다. 이미 봤던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사람이 아닌데도 ‘주인공’이란 단어를 붙일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인 로봇 ‘데이비드’의 심금을 울리는 연기를 보며, 인간과 로봇의 미묘한 경계선을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됐다.
과학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세상의 모든 사물 중 인간만이 가지고 있다고 믿고 있는 감성을 로봇에 부여하는 일은 완전한 지능로봇으로 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지만, 가장 어려운 단계이기도 하다. ‘A.I.’는 바로 이러한 인간성을 로봇에 부여했을 때 일어나는 상황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영화는 아들이 병에 걸려 냉동 보관되고 있는 가정에 로봇 ‘데이비드’가 입양되는데, 그 아들이 요행히 병에서 회복돼 냉동이 해제되면서 데이비드와 갈등이 생기게 되고, 결국 데이비드가 버림받게 된다는 내용이다. 인간성이 프로그램된 주인공 로봇은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다가 결국 자기 자신을 찾아 길을 나서게 된다는, 조금은 신파적인 결말이 추가돼 있다.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미래 로봇들에 주어질 수 있는 인간성 또는 인간 수준 이상의 지능을 인간들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최근 개발되고 있는 로봇들을 살펴보면 위와 같은 상황이 영화 속 이야기로만 끝날 것 같지는 않다. 제한된 기능이라 할지라도 감성을 장착한 다양한 형태의 로봇이 개발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 일본 AIST가 개발한 물개로봇 ‘파로’를 들 수 있다. 음성이나 쓰다듬기 등의 다양한 외부 자극에 반응하는 이 로봇은 병원에서 치매환자나 자폐증 환자의 치료 분야에서 가능성을 인정받고 있다. 무엇보다도 털이 날리지 않고 배설물 걱정이 없어 청결하다는 점과 환자의 상태에 따라 원하는 대로 로봇의 반응을 조절할 수 있다는 점이 높은 점수를 받고 있다. 오래 전 소니가 출시한 ‘아이보’는 이와 같이 인간의 감성을 자극하는 로봇의 선두격이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이 로봇에 기대하는 감성이란 도대체 어느 정도일까. 어떤 사람들은 애완동물과 같이 외부에서의 여러 자극에 직접적으로 반응하는 정도의 감정만 가질 수 있으면 충분하다고 주장한다. 반면 다른 이들은 인간이 서로에게 느끼는 감정을 로봇도 똑같이 공유해서, 내가 슬픔을 느끼면 알아주고 내 친구나 어머니처럼 위로해 줄 수 있어야 진정한 지능로봇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고 말한다.

개인적으로는 ‘로봇은 로봇의 영역에 머물러야 그 자체로 존재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 로봇이 그들만의 특화된 영역에서 벗어나 인간의 영역에 깊숙이 들어오게 되면 우리가 예상치 못한 많은 다른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영화 ‘A.I.’에 등장하는 섹스로봇이 그런 예가 될 것이다. 이러한 로봇들은 순기능보다 인간성이나 인간 사회의 혼란과 파괴를 불러올 가능성이 더욱 크다.

물론 우리는 이러한 인간들 간의 미묘한 감성을 로봇에 영영 실현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인간조차도 상대방의 감정을 올바로 이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뇌에서 이러한 감성이 어떤 방식으로 형성되고 발전되어 가는지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로봇을 연구할수록 더욱 인간의 두뇌와 인간 자체에 대한 경외심이 든다. 그것은 또 로봇 연구자들이 차가운 금속과 냉정한 컴퓨터를 붙들고 불 밝히고 밤새워 연구에 매진하는 이유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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