反세계화와 북유럽 모델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59호 34면

세계화는 기회인가 도전인가. 부자 나라들의 놀음일 뿐 다른 나라들엔 위협이란 비판론이 여론의 줄기였다. 그러나 세계화 여파로 일자리가 줄어들고 ‘금융 폭풍’ 회오리가 안방에까지 몰아치자 세계화를 거역하는 역풍(逆風)이 선진 부국들에서도 드세게 일고 있다.

미국인들의 58%가 세계화는 미국에 나쁜 것이며 28%만이 도움이 된다는 최근 한 여론조사의 결과는 충격적이다. 지난해 7월 해리슨 조사에서도 미국은 물론이고, 영국·독일·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 국민의 대다수도 세계화에 부정적인 것으로 나타났었다.

이런 시류 변화에 정치인들이 민감하게 반응하고, 오바마와 힐러리 등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들은 보호주의적 수사들을 다투어 쏟아내고 있다. 이 때문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미국 의회 비준 전망도 극히 불투명한 상황이다. 프랑스의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도 유럽연합(EU) 바깥의 제품에 고율관세를 물리는 보호주의적 장치를 주창하고 나섰다.

1970년대 말부터 현재까지 진행 중인 세계화는 역사적으로 세계화 제2기에 해당한다. 1850년대부터 제1차 세계대전 직전인 1913년까지 자본·상품·노동의 국제이동이 활발했던 세계화 제1기에 비해 현재의 세계화는 무역 자유화와 금융 세계화가 특징이다.

무역 자유화로 세계의 성장이 촉진되고 한국과 대만 그리고 중국과 인도가 가난에서 벗어나 세계 유수의 성장 축으로 발돋움했다. 그러나 금융 세계화는 급속한 자본의 밀물과 썰물로 동남아와 한국·남미 등 곳곳에서 외환 금융위기를 촉발시켰고, 경제의 불안정성과 위기의 위험성을 증폭시켰다. 흑자의 상징인 스위스항공과 ‘세계의 비밀금고’이자 스위스은행의 대명사인 UBS가 몰락과 대실패를 자초한 것도 범유럽항공사와 초대형 금융회사 등 미국식 비즈니스 모델을 잘못 흉내 낸 결과로 풀이되고 있다.

폐단과 부작용이 많아도 세계화는 이미 피할 수 없는 현실의 일부다. 세계화 제1기는 1차대전 발발과 1930년대 파시즘 등장 등 정치의 힘 때문에 막을 내렸다. 보호주의를 주창하는 정치적 역풍 때문에 오늘의 글로벌 자본주의가 배척당한다면 이는 역사의 되풀이다.

역풍 속 두 ‘이방’ 지대가 눈길을 끈다. 세계적 저성장과 고유가, 유로화 강세 속에서도 1992년 이래 최저실업률을 견지하는 독일이 그 하나다. 미국 경제가 소비지출과 주택 붐을 즐기는 동안 독일은 통일비용과 상대적 고임금 부담 속에서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견뎌냈다.

제조업의 품질에 승부를 걸며 수출 엔진을 재정비해 중국보다 한 차원 높은 제조업센터로 격상시키고 고환율도 이겨내고 있다.
서브프라임 사태 초기 중소 은행 2개가 위기를 맞았으나 독일 전체 금융시스템은 별 타격이 없고 중소 은행들과 가족적 연대를 통한 독일식 ‘하우스 뱅크’의 현대적 부활을 꿈꾸고 있다.

또 다른 이방지대는 세계화를 껴안으며 그 혜택을 알짜로 누리는 북유럽의 하이테크-고복지 국가들이다. 핀란드와 스웨덴·노르웨이·덴마크·아이슬란드 5개국은 ‘북유럽 세계화 포럼’을 결성해 세계화의 도전에 공동보조와 협력을 제도화하고 있다. 지식산업을 기반으로 생산성과 고용을 극대화하고 연구개발 및 교육에 막대한 투자로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세계화의 북유럽 모델(Nordic Model)을 지향한다.

자유무역과 복지제도는 대립관계로 보는 경향이 있지만 이들은 확고한 복지제도로 외부 충격을 흡수해 미국과 일본보다도 개방에 더 유연하고 세계화에 더 전향적이다. 세계화의 정착을 위해서도 복지제도의 확충이 긴요하다는 얘기로 들린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