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사본 못 준다” 열람만 허용…직원이 감시하며 노트북 사용까지 막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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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호 08면

국회사무총장 명의로 본지 취재팀에 보내온 ‘공개 결정 통지서’. 그러나 요구한 자료의 사본은 주지 않고 열람만 허용했다.

국내에서는 1998년부터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이하 정보공개법)이 시행됐다.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다. 이에 따라 정부기관은 비공개 사유가 분명한 경우를 제외하고 모든 공공정보를 청구인에게 제공해야 한다. 법의 취지에 따르면 정부기관은 사본을 주지 않은 채 열람만 하도록 해서는 안 되며 정당한 정보 수집을 제한할 수도 없다. 부득이하게 열람·교부를 병행할 때는 먼저 청구인에게 열람을 허용하되 2개월 안에 반드시 사본을 교부해야 한다.(정보공개법 시행령 제12조 2항)

외유 정보 수집 방해한 국회 사무처

하지만 중앙SUNDAY 취재팀은 국회의원의 해외활동 관련 자료를 모으는 과정에서 국회 사무처의 방해에 시달려야 했다. 취재팀의 이종찬 기자는 지난달 14일 “국회 사무처에 15~17대 국회의원의 해외활동 내역을 달라”며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사흘 뒤 국회 사무처는 간단한 자료를 보내왔다. 목록이나 인원, 전체 비용을 기록한 게 전부였다. 이 기자는 세부 자료를 공개할 것을 재차 요구했고, 국회 사무처는 사무총장 직인이 찍힌 ‘공개 결정 통지서’(사진)를 25일 보내왔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난 게 아니었다.

국회 사무처는 “정보의 양이 너무 많아 열람만 가능하다”며 사본을 주는 것을 거부했다. 법적 근거를 묻는 질문에 “방침이 그렇다”고 했다. 취재팀은 우선 정보 수집이 중요하다고 판단해 법적 대응은 뒤로 미루고 열람하기로 했다. 이달 15일부터 열람을 시작했지만 국회 사무처는 갖가지 방법으로 열람을 제한했다. 열람하는 장소에 직원들이 배석해 취재팀이 무슨 정보를 보는지 지켜봤다. 취재팀이 적은 내역을 자신들의 수첩에 기록했다. 나중에는 노트북에 입력하는 것을 제지하기도 했다.

납득하기 힘든 국회 사무처의 처사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2월 KBS 탐사보도팀의 성재호 기자는 국회의원의 해외방문 경비 내역과 증빙자료, 방문 결과 보고서 등을 공개할 것을 국회에 청구했다. 국회 사무처는 자료공개는 허용하면서도 복사량이 많다는 이유 등을 들어 직접 와서 열람만 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성 기자는 법원에 열람처분을 취소하고 사본교부를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올 1월 성 기자의 손을 들어주는 판결을 내렸다. 현재 이 사건은 2심이 진행 중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2004년 6월 “정보공개 분량이 많더라도 사본을 내줘야 한다”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참여연대 정보공개사업단이 서울시를 상대로 낸 업무추진비 내역 정보공개 소송에서 공개 양이 4만 쪽이 되더라도 사본 교부를 해야 한다고 밝힌 것이다.

한국국가기록연구원 전진한 선임연구원은 “정보공개법의 취지나 법원의 판결에 따르면 정부기관은 열람만으로 공개방법을 제한할 수도, 정보공개 열람 과정을 방해할 수도 없다”며 “이는 시민이나 기자의 정보수집을 명백히 가로막는 행위”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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