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그룹 대표 모임 활성화 윤종용 부회장 역할 커질 듯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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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호 04면

삼성이 새로운 경영체제 실험을 눈앞에 두고 있다. 사장단협의회다. 새 체제는 이건희 회장의 퇴진과 전략기획실 해체를 골자로 한 경영쇄신안에 따라 7월 가동에 들어간다. 1938년 삼성상회 설립 이후 70년간 유지돼 온 회장 중심 체제에 일대 변혁이 오는 것이다. 그룹 현안을 논의할 유일한 조직인 사장단협의회는 현 사장단 회의와는 위상이 달라진다. 삼성이 경영쇄신안에서 밝혔듯이 계열사가 독립적인 자율경영을 하게 되는 만큼 계열사 사장의 권한도 지금보다 훨씬 커지게 된다. 사장단협의회를 구성할 삼성 계열사 사장의 면면을 알아본다.

삼성 끌고 갈 ‘사장단협의회’는

어떻게 구성되나
삼성그룹은 매주 수요일 계열사 사장과 전략기획실 팀장 등이 참석하는 회의를 열어왔다. 일명 ‘수요회’라 불리는 이 회의는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주재했다. 이 회의는 경영을 논의하는 자리는 아니었다. 초청 명사의 강연을 듣고 가벼운 토론을 하거나 정보를 교환하는 게 전부였다. 초청 명사는 대학 총장부터 관상쟁이까지 다양했다. 수요회에서 그룹 주요 현안을 논의하거나 결정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한 계열사 사장은 “수요회는 사장단이 모여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듣고 한담을 나누는 자리에 지나지 않았다”고 평했다.

하지만 7월 이후 가동될 사장단협의회는 수요회와 전혀 딴판이 될 전망이다. 우선 참석 대상이 바뀐다. 기존 수요회 멤버는 41명. 여기서 그룹 전략기획실 팀장 3명이 모두 빠진다. 대신 일부 사장이 더해져 규모는 수요회와 비슷하게 꾸려질 전망이다. 다음달 초 있을 사장단 인사가 소폭에 그친다면 현 수요회 참석자 대부분이 사장단협의회 멤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삼성 안팎에선 전략기실이 할 마지막 사장단 인사 규모는 소폭에 그칠 것으로 점치고 있다. 삼성 고위 관계자는 “당초 지난해 말에 창업 70주년을 맞아 대대적인 물갈이 인사를 할 방침이었으나 특검으로 인해 무산됐다”며 “회장까지 퇴진하기로 한 마당에 계열사 사장단을 대규모로 교체할 경우 조직이 흔들릴 우려가 있어 인사 폭을 줄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어 “5월 초 인사를 하면 연말까지 불과 7개월밖에 남지 않는 마당에 대규모 인사를 할 이유가 없다”고 덧붙였다. 경영쇄신안에서 퇴진이 결정된 삼성증권과 삼성화재 대표 외에 추가로 2~3명가량이 교체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사장단협의회를 누가 이끌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다만 지금까지 수요회를 이끈 윤 부회장이나 이건희 회장을 대신해 대외적으로 삼성을 대표하는 이수빈 회장 중 한 사람이 맞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나온다. 그룹 최고기구라고 하지만 40여 명이 참석하는 사장단협의회가 심도 있는 경영 논의를 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홍익대 김용렬 교수는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한 뒤 미쓰이·미쓰비시·쓰미토모그룹 등이 사장단협의회를 도입했지만 사장단협의회에서 대규모 투자 결정을 내리거나 그룹의 중요한 문제에 대해 해결책을 결정한 적이 없다”며 “삼성의 사장단협의회도 일본의 사장단협의회와 다를 바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때문에 전자·금융·화학 등 소그룹 사장단 모임이 활성화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그렇게 되면 그룹에서 가장 비중이 큰 전자 소그룹을 대표하는 윤종용 부회장의 역할이 지금보다 더 커질 전망이다. 생명 소그룹은 삼성생명 대표이사가 이끌어 갈 가능성이 크다.

어떤 인물들인가
흔히 ‘관리의 삼성’이라 부른다. 삼성이 조직관리를 잘한다는 데서 나온 얘기지만 관리 부문 출신이 잘나간다는 의미도 담겨 있다. 실제 수요회 참석 대상 계열사 사장 중 공석(삼성카드·삼성화재)과 비사업체법인 대표(삼성의료원·삼성경제연구소 등)를 뺀 30명의 출신 직무분석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30명 중 관리 부문 출신이 19명으로 무려 63.3%나 됐다. 이는 상장사 평균치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은 비율이다. 한국상장사협의회가 지난해 12월 코스피 상장사 675개사 대표이사를 분석한 바에 따르면 관리 부문 출신 대표이사 비중은 13%에 불과했다. 기술직 출신 수요회 멤버 비중도 26.6%(8명)로 역시 상장사 평균(13.5%)의 2배가량 됐다. 하지만 영업·마케팅 부문 비중은 6.6%(2명)로 상장사 평균(16.1%)을 크게 밑돌았다.

삼성 계열사 사장들의 또 다른 특징은 나이가 많다는 것이다. 한번 사장에 오르면 장기 재임한 데 따른 것이다. 30명의 사장 평균연령은 59세다. 이는 코스피 상장사 대표이사의 평균 연령(56.4세)보다 2.6세 많은 것이다. 또 이들 30명의 사장직 평균 재임기간은 5.8년(삼성 계열사 사장직을 처음 맡은 시기를 기준으로 한 것임)이었다. 대표이사직을 가장 오래 맡고 있는 인물은 삼성전자 윤종용 부회장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1990년 이후 18년간 대표이사를 하고 있다. 삼성석유화학 허태학 사장과 삼성테크윈 이중구 사장도 각각 11년과 10년의 대표이사 재직 기록을 갖고 있다.

대학 전공은 상경계열이 14명(46.7%), 이공계열이 12명(40%)인 것으로 집계됐다. 코스피 상장사 대표이사는 상경계열이 44%, 이공계열이 31.6%였다. 삼성에 이공계열 출신 사장이 상장사보다 훨씬 많은 것은 삼성전자·삼성전기·삼성SDI 등 전자 계열사가 많은 데 따른 현상이다. 출신 대학은 서울대가 8명으로 가장 많았고, 연세대 6명, 성균관대 4명, 고려대 3명 순이었다. 서울대 출신 사장 비율은 상장사 평균치와 비슷한 수준이지만 연세대 출신 비율은 상장사 평균치(11.2%)보다 높은 20%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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