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책갈피] 삼성-소니 전자업계 두 거인 ‘맞수열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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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삼성과 소니
장세진 지음,
살림Biz,
380쪽, 1만7000원

삼성이 최근 쇄신책을 발표했다. 지난 21년, 삼성을 강력한 리더십으로 이끌어온 이건희 회장이 물러났다. 삼성은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할 기로에 섰다. 그간 삼성과 소니에 대한 책은 적지 않았다. 그러나 삼성의 성공과 소니의 실패를 비교한 책은 흔하지 않다. 세계 전자업계의 두 거인인 삼성과 소니의 명암은 중국 경제의 부상, 미국 달러화의 위축과 함께 지난 10여 년 세계 경제의 큰 흐름이었다. 무엇보다 삼성과 소니의 엇갈린 운명이 흥미진진하다. 드라마와 스토리가 있다.

삼성이 반도체-휴대폰-LCD라는 성공적인 사업전개를 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소니가 경영전략의 혼선, 내부 조직의 혼란으로 패착을 거듭한 것도 마찬가지다. 저자가 ‘삼성과 소니’를 통해 아주 색다른 분석이나 접근을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알 만한 사람들이 다 아는 사실을 차분하게, 입체적으로 두루 꿴 것이 돋보인다.

소니는 아날로그 시대의 절대 강자였다. 디지털 시대에 진입하면서 기존의 성공신화가 오히려 발목을 잡았다. 경영권이 창업자 오너에서 전문경영인으로 넘어가면서 리더십이 흔들리고 조직이 혼란에 빠졌다. 소니의 독립적인 사업부제인 컴퍼니 제도는 오히려 개별 사업부들이 따로 노는 이기적인 ‘사일로(silo)’ 조직으로 변해 버렸다.

창업 이후 소니는 트랜지스터 라디오와 워크맨, 플레이스테이션 등 창의성에 바탕을 둔 대형 히트상품을 개발했다. 그러나 지난 10년간 소니의 대형 히트제품은 찾아보기 어렵다. 소니는 독창적인 완성품에만 골몰해 반도체와 LCD 같은 부품사업은 외면했다. 영화를 비롯한 콘텐트 분야로 영역을 넓혔지만 손에 잡히는 성과는 거두지 못했다.

삼성전자는 오너의 강력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선택과 집중을 했다. 외환위기 이후의 한정된 자원을 반도체, LCD, 휴대폰에 몰아넣었다. 상대적으로 경쟁력을 보유한, 자신 있는 부문에만 투자를 집중했다. 이윤우 삼성전자 부회장은 “D램 반도체 사업은 시장은 매우 크지만 설계 기술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하나만이라도 잘 하자는 의견에 따라 모든 자원을 메모리에 집중했다. 선진국과의 기술격차를 극복하기 위해 설비투자에 집중했고, 타이밍도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다”고 했다.

삼성은 무엇보다 스피드를 중시했다. 남들보다 한발 앞서 신형 반도체와 휴대폰을 개발해 시장을 지배하는 전략을 취했다. 가격이 비쌀 때 최대한 수익을 거둔 뒤 경쟁업체가 뛰어들면 값을 낮추는 방식이었다. 삼성전자 윤종용 CEO는 “아무리 비싼 사시미라도 하루 이틀 지나면 가격이 떨어진다. 횟집이나 디지털 전자업체의 재고는 치명적이다. 스피드가 모든 것이다”고 말한다. 아날로그 시대의 2류 기업이던 삼성전자는 디지털 시대를 맞아 새로운 도약의 계기를 잡는 데 성공했다.

『삼성과 소니』의 저자 장세진 박사는 아날로그 시대의 절대강자였던 소니가 어떻게 흔들리고 삼성이 어떻게 부상했는지를 추적했다. 삼성이 패러다임의 변화를 주시하고 창의력을 키우지 않으면 위험하다고 그는 경고했다.

삼성의 성공신화는 끝없이 계속될 수 있을 것인가. 저자는 경계심을 표시한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삼성 앞에 놓인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 삼성은 후발 주자로, 열심히 노력해 앞에 있는 선두주자를 쫓아가면 됐다. 하지만 삼성은 더 이상 추종자가 아니라 모방할 대상이 없는 선두주자다. 창의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앞으로 삼성이 어려운 상황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삼성의 자만 가능성이다. 소니도 자만에 빠졌다가 자신의 무덤을 팠다. 지금 삼성전자도 사상 최고의 실적을 이어가면서 자신감이 넘치고 있다. 저자는 삼성이 오너 체제 이후 전문경영인 체제로 넘어가면서 혼선을 빚을 경우 소니의 실패를 답습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저자는 지난해 한국학술진흥재단의 인문사회부문 국가석학으로 선정됐다.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뒤 미국 와튼스쿨에서 경영학박사를 받았다. ‘삼성과 소니’에도 산업과 경영을 아우르는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시각이 두드러진다. 그러나 글은 매우 쉽다. 일반인이 읽기에도 전혀 부담스럽지 않다.

이철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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