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Story] 내한공연 온 듀란듀란 한국 패션에 필 꽂혔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1면

“내가 입고 싶은 옷을 만들죠. 아이디어는 공연을 하기 위해 세계 곳곳을 다니면서 얻고요. 무대에 오를 땐 내가 디자인한 옷을 입습니다. 그러면 고객들의 반응을 바로 체크할 수 있지요.”

이 정도면 패션업을 하기에 필요하고도 충분한 조건을 갖춘 것 같다. 1980년대 10대 소녀들의 우상이었던 인기 팝 밴드 듀란듀란의 베이시스트 존 테일러(48) 얘기다. 그가 중년의 모습으로 지난주 한국을 찾았다. 밴드 결성 30주년 기념 공연을 위해서다.

그를 만나기 위해 연락했더니 묵고 있는 호텔로 오란다. 커피숍인가 했더니 자기 방으로 안내했다. 방 한가운데에는 큼직한 여행가방이 열려 있고 옷가지가 흩어져 있었다. 침대·소파·탁자 위에도 티셔츠와 청바지가 널려 있었다. 모두 그가 디자인 작업에 참여한 옷이었다. 그는 현재 미국의 패션 브랜드 주시 쿠튀르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란 직함을 갖고 있다. 음악활동은 지금도 하고 있다. 그것이 패션 일을 할 수 있는 자양분이라고 했다. 음악과 패션은 한 핏줄이라는 얘기다. 패션 사업가로서 그의 생각은 관심을 끌 만했다.

“패션요? 그것도 다른 산업과 마찬가지로 앞으로 아시아가 주도할 겁니다.”

“그렇게 보는 근거가 뭡니까.”

“그동안 억눌려 있던 아시아인들의 정체성이 기지개를 켜고 있습니다. 사회적 개방이 속도를 내고 있고, 경제적 여유도 많아졌습니다. 패션은 자기를 표현하는 방법이죠. 앞으로 중국에서 패션에 대한 관심이 폭발하면 큰 장이 설 겁니다. 지금은 아주 작은 파티가 시작된 정도죠.”

북미와 유럽 사람들이 지난 수십년간 패션을 놓고 다양한 시도를 하면서 패션 산업이 성장했듯이 이젠 아시아에 그런 때가 온다는 설명이었다. 고개가 끄덕여졌다.

패션업계에 발을 들여놓은 건 아내 겔라 테일러 덕이었다. 그녀는 주시 쿠튀르의 공동 창업자이자 지금도 공동대표다. 지난해 매출이 거의 5000억원이니 상당한 규모다. 여성복으로 사업을 시작했는데 4년 전 남성복 라인을 만들면서 남편을 끌어들였던 것이다. ‘지나치게 여성스러운’ 브랜드 이미지에서 탈피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그는 “아내가 보기엔 내가 남성성의 상징인 모양”이라며 웃었다.

그는 남성복 부문을 맡아 디자인 방향과 스타일을 조언한다. 직접 디자인한 티셔츠도 250벌이 넘는다고 한다. 이번 내한 공연 때도 듀란듀란은 그가 디자인한 옷을 입고 무대에 올랐다. 주로 티셔츠·바지·트레이닝복 등 편안하게 입을 수 있는 옷이다. 브랜드 로고를 직접 디자인하기도 했다.

“오늘날 30대는 예전의 20대 같아요. 자기 표현 욕구가 강하고, 패션에 욕심도 많죠. 이들을 포괄하는, 개성 있는 캐주얼 시장은 앞으로도 계속 성장할 것으로 봅니다.”

그는 14년 전 처음 한국을 찾았으며 이번이 두 번째였다. 입국하던 날 인천공항에는 팬들이 몰려 나와 듀란듀란을 반겼다. “예상치 못한 환대에 깜짝 놀랐어요. 우리가 비틀스라도 된 것 같더라고요.” 그는 익살을 부렸지만 감동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번 아시아 투어 중 공항에서 팬들의 환호를 받은 것은 한국이 유일했다고 한다. 그게 다이내믹 코리아라고 했더니 다이내믹이라는 말이 딱 맞는 것 같다고 받았다.

“눈으로 믿을 수 없을 만큼 발전했어요. 성공을 이뤄냈다는 자신감을 바탕으로 정체성도 명확해졌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과거 한국은 전통과 현대가 뒤섞인, 아이도 어른도 아닌 어정쩡한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광을 잘 낸 첨단기기 같아요. 패션 감각도 수준급이고요.”

글=박현영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듀란듀란(Duran Duran)=1980년대를 풍미한 꽃미남 팝그룹의 원조. 78년 영국에서 존 테일러(베이스)와 닉 로즈(키보드) 둘로 출발했다. 로저 테일러(드럼)와 사이먼 르봉(보컬)은 뒤에 합류했다. 댄스와 펑크, 전자음악과 록을 혼합한 음악으로 80년대 뉴웨이브를 이끌었다. 통산 8500만 장의 앨범을 판매했고, 93년 할리우드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