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들 총선앞둔 명절 사정바람에 썰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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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의원들에게 이번 추석은 남다른 의미가 있다.국회의원 선거를 바로 앞둔 명절이기 때문이다.
중추가절(仲秋佳節)을 빙자해 지역구에 선물도 돌리고 인사도 다니면서 유권자들이 그동안 소홀했던데 대한 섭섭함을 잊어주길 바란다. 선거일(96년4월11일)로부터 1백80일 전인 10월14일부터는 금품과 음식제공등 기부행위가 일절 금지되는 만큼 이번 추석이야말로 적기다.
그럼에도 의원들의 표정은 밝지 않다.악재들이 겹쳐있기 때문이다.많은 의원들이 『지역구를 다닐 수도, 안다닐 수도 없다』고하소연하고 있다.
이처럼 의원들이 갑갑해하는 이유는 우선 사정(司正)때문이다.
갑자기 불어닥친 사정 한파는 정치권 전체 분위기를 얼어붙게 했다. 주머니 속도 썰렁해졌음은 물론이다.그야말로 순수한 의미의 조건없는 돈이라는 것이 있기 어려운 현실임을 감안하면 사정이 의원들의 추석자금형편에 적지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점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더구나 사정당국에서 문제삼고 있는 두가지 의원비리는 묘한 상징성이 있다.
최낙도(崔洛道)의원이 했다는 대출알선등 이권개입을 통한 비리는 의원들이 평상시에 애용하는 자금동원법이고,박은태(朴恩台)의원이 국회자료제출을 빌미로 금품을 받은 것은 국회개회를 전후해벌어지는 의정(議政)관련비리의 대표적 형태다.
의원들은 평소 연고가 있던 기업으로부터 도움을 받기도,정기국회와 연계시켜 손을 벌리기도 어렵게 된 것이다.정기국회는 11일 개막된다.
자금력이 있는 의원의 경우 사정이 조금 다를 수 있으나 역시위험부담을 안고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감사원등에서 사정의 연장선상에서 추석을 이용한 선거운동이나 금품수수에 대한 강력한 감시에 이미 나섰기때문이다.
현안으로 대두되고 있는 추곡매입도 의원들의 고민거리다.
북한 쌀지원등으로 고조된 농민의 불만이 추곡매입량과 매입가 결정과정에서 다시 폭발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여야가 모두 당내대책회의등을 열어 양을 늘리고 인상률을 높이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으나 뾰족한 방안이 있을 턱이 없다.
재정경제원은 벌써부터 난색을 표명하고 있다.
충청권과 경기지역의원들은 엎친데 덮친격.수해의 상처가 예상외로 크기 때문이다.
최근 민자당 당무회의에서 중진들이 체통도 잊고 특단의 수해복구지원 대책이 필요하다고 줄을 이어 주장한 것은 그만큼 사정이다급하다는 얘기다.
현지에서는 재해가 발생하면 일단 사전방지책을 세우지 못한 여당에 대한 원망과 상대적으로 많은 복구지원예산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야당보다는 여당의원이 유리하다는 점 때문에 여야 모두 현역에게는 불리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고 한다.
이와관련해서는 非수해지역의 경우 예년에 볼 수 없던 풍작이 될 것이라는 소식에 해당지역의원들의 추곡매입 걱정이 더 깊어지고 있다는 웃지못할 소식도 있다.
점점 둥글게 커가는 팔월 보름달처럼 의원들의 수심(愁心)도 커가는 것이 요즘의 정가사정이다.
〈金敎俊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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