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작기행>"전자공화국" 로렌스 그로스먼著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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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뉴트 깅그리치 美하원의장이 취임후 가장 먼저 제안한 아이디어중 하나가 「전자기록보관소」였다.의회에 제출되는 모든 법안과 상.하 양원에서 행해지는 연설내용 등을 즉각 인터네트에 올려 적어도 의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만이라도 국민들 에게 소상하게 전하자는 것이었다.그렇게 함으로써 워싱턴 정가를 보는 국민들의 냉소적 시각을 바꿔보자는 의도였는데 정보통신의 발달에 따른 정치권 변화를 읽게하는 대목이다.
미국의 엘리트들은 국민들의 뜻과는 관계없이 움직이는 워싱턴 정가를 불신하고 정치인들이 선거구민의 뜻을 존중하도록 유도하려는 노력을 다방면으로 펼치고 있다.의원들의 임기를 제한하려는 움직임도 그렇고,시청자가 참여하는 정치 토크쇼가 많은 것도 그런 노력에서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NBC와 PBS사장을 역임한 미디어전문가 로렌스 그로스먼이 최근 발표한 『전자공화국』(The Electronic Republic.Viking刊)은 정보통신의 발달이 미국 민주주의를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가를 분석한 책이다.
저자는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일반대중이 법제정과 정책입안에 관여하는 정도가 더 심화될 것이라고 주장한다.한마디로 직접민주주의의 성격이 강해지고 있다는 것이다.이책에선 직접민주주의의 장단점과 함께 TV.인터네트.전자우편.팩스.인터액 티브 컴퓨터의 발달이 유권자에게 미치는 영향,「전자공화국」에서의 바람직한정책 등도 논의되고 있다.
『TV등 미디어가 시청자들에게 바깥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직접 전하기 때문에 선거철이 돼도 유권자들이 정당이나 저널리스트.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지 않고 후보를 스스로 선택한다.』 지난 92년 양당제의 뿌리가 깊은 미국에서 무소속의 로스 페로가대통령선거전에 나서 예상외의 선전을 벌일 수 있었던 것도 그런환경때문이었고 빌 클린턴 대통령의 승리 역시 TV와 라디오 토크쇼를 중시한 전략에 크게 힘입었다.
그로스먼은 미국대중들이 이런 식으로 정치권을 이끌고 있는 현상을 행정부.사법부.입법부에 이은 「제4부」의 출현으로 보고 있다. 이렇게 되자 정치권에서도 일반대중을 의식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중요한 이슈에서 의사를 결정하기 전에 여론조사전문가들에게 자문하는 정치인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그러다보니 대통령도 정책선택의 폭이 좁아지고 정책을 집행하는데도 더 많은시간이 걸리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미국 민주주의 초기의 대통령이 자신의 신념을 바탕으로 정책을 밀고 나갔던 것과 달리 TV시대의 대통령은 어떻게 보면 여론을 따르는데만 급급하다는 인상을 떨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TV의 지배현상이 본격화하면서 미국 행정부의 허약성이 두드러졌던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리처드 닉슨대통령이 사임한 후 지금까지 단임에 그친 대통령이 3명이나 된다.유일하게 로널드 레이건만이 연임에 성공한 정도다.
저자는 심각한 것을 기피하는 현대인들이 판단을 내리는 일 자체를 싫어할 뿐아니라 탈정치적이라는 일반적인 통념을 거부하고 『일반 대중의 판단은 정치엘리트들의 그것에 비해 전혀 손색이 없다』고 주장한다.
대중의 의견이 세를 얻어가는 현상에 대해 저자가 우려하는 점은 대중의 지혜수준이 아니라 그들이 접하는 정보의 수준이다.월트 디즈니社가 ABC방송을 인수하고 웨스팅하우스社가 최근 CBS인수의사를 밝힌데서 알수 있듯 현재의 정보통신산 업은 소수의거대기업에 지배당하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정보와 아이디어의흐름이 이들 소수 거대기업에 좌지우지될 수 있다는 우려다.또 부유한 정치인이나 특수이익집단이 영향력 높은 TV의 황금광고 시간대를 독점하는 경향과 사회.정치 .경제적으로 중요한 비판기사들이 부정부패.사고.범죄.성스캔들 등에 밀려나고 있는 현실도문제점으로 지적되었다.
그러면 「전자공화국」의 출현을 맞아 우리는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가.저자는 모든 시민들이 대중토론에 참여하는데 필요한 기본적인 정보통신장비를 갖출 수 있도록 정부가 세제혜택을 부여해야한다고 주장한다.비상업 라디오방송이나 TV방송을 전국 규모로 묶어 공익 정보통신 시스템을 구축하고 모든 정치후보들의 TV토론참가를 의무화하는 것도 아이디어로 제기되었다.
鄭命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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