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호세상보기>니코틴과 알콜의 挽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미스터 프레지던트 클린턴.솔직히 말해 지금까지 귀하가 하는일이 마땅치 않았습니다.보스니아 내전도 시원스럽게 해결하지 못하고,경수로 협상에서 북한에 질질 끌려 다니고….그러나 얼마전미국 10대들에게 담배를 팔지 못하게 한 「혁 명적」조치는 세계 모든 부모들의 찬탄을 살만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혁명적이라고 한 것은 귀하가 이 조치에서 니코틴을 「습관성 마약(Addictive Drug)」으로 규정했다는점,막강한 로비력을 자랑하는 담배농가.담배업계.광고계.정계 의 반발을 물리치고 이런 대책을 마련했다는점 때문입니다.앞으로 90일간의 여론 수렴 기간에도 흔들리지 말고 당초의 신념을 관철하기 바랍니다.』 『귀하의 조치에 영향을 받았는지는 모르지만 며칠뒤 한국 정부도 종전의 관대한 흡연 풍토에 철권(鐵拳)을 가하는 조치를 취했습니다.공공장소에서의 금연(禁煙)을 의무화하고,청소년에게 담배를 팔면 벌금을 매기는 법령을 만들었습니다.담배 를 피울 수 있는「유리 우리」가 김포공항에 설치되면서부터 한국 애연가들의 수난이 시작됐습니다만 흡연자를 박대하는 귀국의 풍속을 따라 가는 속도가 아주 빠릅니다.거기다 담뱃값까지 올린다니 한국의 애연가들은 2중의 펀치를 맞고 있읍니 다.』 『담배가 무엇입니까.한국의 정현종(鄭玄宗)시인은 「담배를 보는 일곱가지 눈」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읊었습니다.「하염없는 손들의 마지막 신호/연기처럼 사라지는 약속/킹 사이즈의 혼란/구호에 대한 암호/등화관제아래 지각없는 불빛/습관 적인 무적(霧笛)/아마 우리 숨결의 외출.」난해한 시입니다만 마지막 구절은 담뱃갑에 쓰인 경고문이현실로 나타날 가능성을 암시하는것 아닐까요.』 『그런데 귀하에게만 알려드립니다만 한국에서의 反니코틴 운동은 反알콜 운동과 같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 특색입니다.한국 정부는 같은날 17도가 넘는 술의 방송광고를 금지하는 법령을 확정지었습니다.획기적인 일은 모든 주류(酒類)에 경고 문을 의무적으로 부착하도록 한 것입니다.「과음(過飮)은 건강에 해롭습니다」라는 온건한 문구이지만,누가 압니까.담배의 경우처럼 경고문의 내용이 점차 강화될지.간염(肝炎)왕국인 한국에서 정부가 이처럼 국민의 건강을위해 신경을 쓴다면 멀지않아 한국인은 세계에서 가장 건강한 국민이 될 것이라고 감히 귀하에게 단언하는 바입니다.』 『술이 무엇입니까.영국 시인 W B예이츠는 「술 노래」라는 시에서 이렇게 읊었습니다.「술은 입으로 들어오고/사랑은 눈으로 들어온다./우리가 늙어 죽기 전/알아야 할 진실은 이것 뿐./나는 내입에 잔을 들며/그대를 바라 보고 한숨 짓는다.」술과 사랑이 동격으로 대접받는 것 같다면 너무 직설적일까요.』 『우리 한국인들은 대체로 세계 어디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을 호주가(豪酒家)이며 애연가들인데,이제 서서히 그 명성에 제동이 걸리는 것 같습니다.그런데 한국의 反니코틴 反알콜운동은 교육세 세수증대와깊이 연관이 돼 있다고 합니다.그래 서 특히 한국의 애주가들은지금 소주에만 부과되는 교육세를 더 물테니 눈치 안보고 술을 먹을 수 없겠느냐고 애처로운 하소연을 하고 있답니다.미국에서 反알콜 운동을 벌일 때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수석 논설위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