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논단>정리해고 시행의 전제조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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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정부가 정리해고(整理解雇)를 명문화할 모양이다.부자연스러운 현재의 고용관행에 비춰 바람직한 방향전환이고,따라서 빠를수록 좋다. 정리해고는 그동안 해고를 둘러싼 분쟁에서 나온 판례와 노동부의 지침이 있을 뿐 사실상 법적.제도적 기반이 마련되지 않았다.89년의 판례에 따라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성,해고회피위한 성실한 노력,합리적 정리기준과 공정한 선정기준,근로 자와의성실한 협의등 「4대요건」을 갖추기 전에는 사실상 정리해고를 할수 없게 돼 있었다.물론 그 요건의 해석이 90년대초 이후의판례들에 의해 완화되기는 했으나 기본맥락은 그대로다.그래서 정리해고는 기업이 경제적.기술적 여건변화에 대한 경영합리화수단으로 원용할 수 없었고 도산지경에 이르러서야 쓸수 있는 방법일 뿐이었다.대부분 80년대 후반 민주화과정에서 틀이 다시 짜여진현재의 노동관련 제도와 관행은 노사의 교섭력에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장치가 미흡하다는 것이 일반적 평가다.그 결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한국보고서」도 지적하고 있듯이 우리의노동시장이 점차 경직성을 띠게 됐다.따라서 정리해고의 명문화와변형근로시간제 도입등은 구조적인 노사안정과 우리 노동시장의 유연성 제고 에 일조할 것이며,제도가 없음으로 인해 발생할수 있는 노사분규를 미연에 방지할수 있다는 판단이다.
정리해고의 명문화가 당위성이 인정되는 만큼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도 많다.그 첫째는 정리해고의 명문화가 자칫 제도마련에 마음이 앞선 나머지 사실상 「해고권의 남용」을 방조하는 식이 될수 있다는 점이다.따라서 해고권의 한계를 분명히 하되 경영권을 제약하지 않도록 해야 하고,이를 위해서는 해고요건과 해고절차가 명료성과 형평성을 유지하는데 지혜가 모아져야 한다.특히 정리해고의 명문화 자체를 노조활동의 억압책으로 받아들이고 있는지금의 분위기를 감안할 때 이 작업 에 노.사.정(勞.使.政)의 성실한 참여가 전제돼야 한다.이 작업에는 근로자대표와의 협의,관할기관에의 통지,해고회피노력,해고선정기준,해고영향경감조치등에 관한 국제노동기구(ILO)의 권고사항이 많은 참고가 될 것이다. 둘째,우리의 노동현실에서는 당위성만큼 중요한 것이 형평이다.따라서 정리해고의 명문화는 그동안 미뤄온 총체적인 노동관련법 개정의 일환으로 추진돼야 한다.만일 정리해고의 명문화만별개로 추진될 경우 노.사의 권익보호가 형평을 잃게 되 고 또어렵게 정착되고 있는 노사화합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근로자의 권익보호와 관련한 우리 법들이 ILO 권고사항으로 대표되는 국제규범및 관행과 우리경제의 수준에 비춰 적절한것이냐를 놓고 국내외에서 진행돼온 논란이 주목된다.
그중에서도 복수노조금지.제3자개입금지 등은 분규발생을 억제하는 효과가 크지 않으면서도 노조활동을 억제한다고 해 노동계의 반대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가하면 이 제도들이 성급하게 도입될경우 발생할수 있는 사회적 혼란과 남북대치라는 우리의 시대적 특수상황에 비춰 여전히 그 필요성이 인정된다는 주장도 강한 형편이다. 향후 우리의 근로관행과 기업경영행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이들 논의는 이제 하나의 목소리로 정리돼야 할 단계라고 생각된다.특히 OECD 가입논의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정도로 변모한 우리경제의 모습,노사권익의 균형보호에 대한 사회적 합의,특히 이들에 대한 구체적이고 지속적인 ILO의 권고등을 고려할 때 이들 법개정은 정리해고 명문화와 동시에 논의되는 것이 정도(正道)인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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