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반군 사령관 만나 담판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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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호 18면

인도네시아 칼리만탄섬 동남부의 파시르 유연탄광. 1981년 광업진흥공사가 우리나라 최초로 해외 자원탐사에 성공한 프로젝트다. 사진 제공=광업진흥공사

우리나라의 해외 자원탐사는 1981년 초 인도네시아 유연탄광 탐사에서 시작된다. 당시는 국내 대기업의 해외 자원탐사가 본격화하지 않아 대한광업진흥공사(이하 광진공)가 해외자원 탐사를 도맡았다. 광진공 해외자원본부의 탐사 전문가들은 세계를 누비며 ‘자원 한국’의 이상을 위해 뛰었다. 이 중 이종식·이건구·채성근씨는 업계에서 ‘탐사의 달인’으로 통한다. 세 사람이 탐사한 전 세계 광산은 우리나라에서 탐사한 광산의 절반을 넘는다. 탐사 전문가들은 항상 에피소드를 몰고 다닌다. 말 한마디에 수십억 달러가 움직일 수 있는 아찔한 기억은 물론이고, 목숨을 잃을 뻔한 경험도 많다.

‘탐사의 달인’ 3인 통해 본 해외자원 개발史

세계 무대에 한국 알린 이건구씨
2년 전 현역에서 물러난 이건구(60)씨는 80, 90년대 자원탐사 실적이 거의 없던 한국을 자원탐사 업계로 진출시켰다. 그는 90년대 초 광진공의 해외사업부장으로 호주 토가라노스·와이옹 탄광의 탐사를 이끌었다. 이들 광산은 2011년부터 연 710만t씩의 유연탄을 생산할 예정이다. 토가라노스는 한국 지분이 33.4%, 와이옹은 95%에 이른다. 현역 때의 이야기를 묻자 그는 필리핀 반군 사령관과 담판한 이야기부터 꺼냈다. 84년 내전 중이던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 지역에 탐사를 나갔던 이 전무는 부하 직원과 둘이서 반군 점령지역으로 들어가 광산 개발 협상을 했다.

“반군 지역에 들어섰는데 조용하더라고. 나중에 사령관이 ‘저격수 3000명이 주변에 배치돼 있었다’고 하는데 어찌나 겁나던지. 식은땀이 다 났어. 하지만 반군도 먹고살 만한 수입원이 필요할 테니 ‘설마 죽이기야 하겠나’ 하고 생각했어. 그러곤 ‘광산을 개발하면 로열티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지”
아무리 탐사의 달인이라고 하지만 실수한 적도 있다. 그는 93년 호주 퀸즐랜드 주정부와의 협상을 회고했다.

그는 “내가 실무를 맡아 협상한 첫 경험이어서 그런지 너무 긴장했다”며 “구체적인 제시액에 대해 우리 측 통역 요원과 영어로 토의하는 실수를 저질렀다”고 말했다. 다행히 퀸즐랜드 주정부 관계자가 대화 내용을 정확히 듣지 못해 무사히 넘어갔다는 것이다. 그는 탐사 전문가의 조건으로 판단력을 강조한다. “경험을 쌓으며 광산에 대한 판단력을 함양하는 것이 탐사의 기본”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갱도에 갇혀 죽을 뻔한 채성근씨
채성근(52) 광진공 조사개발팀장은 현역 탐사 전문가 중 최고라는 소리를 듣는다. 채 팀장은 지난 10년간 주요 대형 프로젝트의 협상을 주도했다. 페루 마르코나 동광, 마다가스카르 암바토비 니켈광, 캐나다 셰익스피어 동·니켈광과 17일 본계약을 한 멕시코 볼레오 동광이 모두 그의 작품이다.

채 팀장도 초년 시절 아찔한 경험이 있다. 그는 85년 10월 정선군 무연탄광을 탐사하다가 목숨을 잃을 뻔했다. 탄광 탐사를 마치고 나오던 중 갱 입구가 무너진 것이다. 채 팀장은 “입구 7m 앞에서 갱도가 무너지는 모습에 ‘이젠 죽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무너진 갱 입구에 뚫려 있는 작은 구멍으로 간신히 나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볼리비아의 수도 라파스에 머물고 있는 그는 현지 국영 광물기업 코미볼과 구리광산 개발을 협의 중이다.

볼리비아와 50대50의 지분으로 개발하는 코로코로 구리광산은 2011년 생산을 시작한다. 매장량은 1억t. 채굴한 구리는 전량 한국이 구매권을 갖는다. 지분대로 광물 구매권을 가져가는 국제 관례에 비추어 볼 때 파격적인 조건이다. 그는 볼리비아가 자원 부국이지만 자금력이 부족하고 또 개발 경험이 적은 점에 착안해 개발 시작 전까지의 탐사 비용 전액을 한국에서 부담하겠다는 조건을 제시했다. 코미볼은 이에 흔쾌히 응했다.

채 팀장은 탐사를 나가기 전 한 달가량을 공부에 투자한다. 광산 현장조사는 물론 현지 담당자와의 협상에서도 지식 싸움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광물·지역별로 특성을 이해하는 것은 물론 현장에 대한 각종 연구 경향까지 섭렵한다. 그는 “관련 논문과 신문기사 등을 꼼꼼하게 읽고 출발해야 낭패를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채 팀장은 외국어 실력을 강조했다. 그는 “90년 터키 크롬광 탐사 당시 현지 기술진과 영어로 소통하는 데 한계가 있어 터키어 사전을 들고 다니며 토론을 진행한 적이 있었다”며 “탐사 전문가에게는 현지어 구사 능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해외 자원탐사 1세대 故 이종식씨
해외 자원탐사 1세대로 손꼽히는 사람은 2001년 세상을 떠난 이종식(당시 67세)씨다. 서울대 광산과와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이씨는 80년대 해외 자원탐사를 이끌었다. 그가 개발을 주도한 인도네시아 파시르탄광은 한국 최초의 해외탐사 광산으로 84년 첫 생산 이래 연간 2000만t의 석탄을 생산하고 있다.

이씨는 생전에 친화력을 유난히 강조했다. 현지 기술진·인부·관료 할 것 없이 금세 친구로 만들어 프로젝트를 성사시켰다. 강천구(53) 광진공 홍보실장은 이씨에 대해 “영어를 잘해 외국인과 의사소통도 문제가 없었고 성격이 워낙 화통해 처음 보는 사람과도 금세 친구가 될 정도였다”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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