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인터넷 막글을 탄핵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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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아무렇게나 함부로 말하는 사람의 입을 가리켜 '마구 뚫은 창 구멍'이라 하고, 그런 언행을 일러 '마구발방'이라 한다. 대책 없이 마구 낳아놓은 이를 망나니, 또는 막바우라고 하는데 이들은 대개 막되고 막가는 막살이의 행태를 일삼는다.

고유어 '막-'이나 한자어 '莫-'은 이처럼 좋은 의미로 쓰이지 않는다. 제멋대로, 심하게란 뜻 외에도 더 이상 어쩔 수 없는, 막다른 지경을 이르기도 한다. 함부로 내뱉는 말을 막말이라 하듯 제멋대로 내갈기는 글을 막글이라 부를 수 있다. 흔히 낙서(落書)라는 일본 한자어를 빌려쓰고 있으나 막말과의 형평을 고려하면 막글이란 용어가 더 적절한 것 같다.

그런데 이런 막글들이 최근 인터넷상에 난무하고 있어 우리말을 아끼는 이들의 우려를 자아내게 한다. 1980년대 후반인가, 텔넷(telnet)의 상용화로 PC통신이 등장하면서 우리는 게시판 글이나 채팅용어를 접하게 됐다. 흔히 통신언어 혹은 전자언어라 일컫는 이런 또 다른 언어세계가 우리의 일상에 자리잡게 된 것이다. 이후 90년대 들어 인터넷 익스플로러와 넷스케이프 등의 웹브라우저가 등장하면서 인터넷 게시판, 이동통신의 문자메시지, 전자 메일 등에서 이런 통신언어의 사용이 폭주하기에 이른다.

흔히 통신언어 제1세대라 일컫는 초기에는 '방가방가, 안냐세여, 어솨요(어서와요)'에서 보듯 재치가 엿보여 그런 대로 애교로 보아줄 수도 있었다. 극도의 생략법에 의한 표음주의식 표기법은 통신비를 줄이며 자신의 의사를 신속히 전달하려는 언어경제학적인 측면으로도 이해된다.

그러나 통신언어의 급격한 확장은 급기야 우려를 넘어 절망의 단계에 이른 듯하다. 특히 월드컵 이후 10대를 중심으로 한 일부 네티즌에 의해 기존의 문법이나 표기법은 그 근간을 위협받게 된 것이다. 이런 현상은 제2세대 통신언어로 분류되는 소위 '외계어'의 출현에 이르면 그야말로 막간 느낌마저 들게 한다. 외계어란 말 자체는 우리말이되 그 표기법은 한글의 자음이나 모음 대신 한자나 영어.러시아.일본어 문자를 비롯해 아라비아 숫자 등의 특수 기호까지 동원해 그 행태는 가히 기성세대의 상상을 초월한다. 단순한 문자 유희를 벗어나 언어 파괴에 이른 것이다.

정보화시대에서 통신언어의 출현은 당연한 귀결이며 그 도도한 흐름은 어느 누구도 거역하거나 외면할 수만은 없다. 다만 그 흐름이 너무나 빠르고 거세 미처 이에 대처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안을 마련하지 못한 것 또한 사실이다. 학자들이나 전문가들조차 단순히 느낌만을 토로할 뿐으로, 이를테면 아이콘이나 이모티콘 등의 색다른 기호들은 마치 동굴벽화나 암각화에서 볼 수 있는 고대의 상형문자를 닮았다고 한다. 이를 두고 어떤 이는 원시로의 회귀라 말하기도 하고, 혹자는 새로운 문화의 탄생이라 반기기도 한다. 어떤 시각에서 보든 최근의 통신언어는 과거 수천 년에 걸쳐 인류가 발전시켜 온 말과 글의 질서를 송두리째 뒤흔든 것만은 분명하다.

요사이 탄핵 정국의 소용돌이 속에서 정작 탄핵돼야 할 사안은 탄핵의 가부가 아니라 이처럼 순화되지 못한 일부 막글의 난무가 아닌가 한다. 가상공간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고 이런 개인 의견들이 모여 여론을 형성하고 이것이 국가시책에 반영돼야 함은 지극히 당연하다.

다만 비난과 욕설로 인터넷 화상을 더럽히는 일부 네티즌의 행위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남의 의견을 존중해 경청하지 않는 한 진정한 의미의 토론의 장, 여론형성의 장이 될 수 없다. 일방적인 자기주장의 표출이자 개인적인 불평.불만의 배설처, 나아가 PC가 악다구니판이나 욕지거리의 경연장으로 전락하는 현실을 더 이상 방치할 수만은 없다. 사회정화 내지는 국어순화의 차원에서도 이런 막글은 자제돼야 할 것이다.

천소영 수원대 교수.국어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