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가 유종호 산문집 '내 마음의 망명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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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문학평론가 유종호(연세대 석좌교수)씨가 산문집 '내 마음의 망명지'(문학동네)를 냈다. '함부로 쏜 화살'(1989년) 이래 산문집으로는 15년 만이다. 우리 나이로 올해 일흔. 노학자의 온축(蘊蓄)된 지혜가 책갈피마다 묻어난다.

"민주주의를 위해 누구 못지않게 헌신한 토마스 만이 '거리의 장삼이사(張三李四)가 베토벤의 어깨를 치며 '노형 안녕하시오'라고 말하는 것이 민주주의가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뛰어남에 대한 경의가 사라진 사회에서 뛰어남이 성취되기는 어려울 것이다."('뛰어남에 대한 경의')

"확실히 우리는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를 살고 있으며 서정시가 하찮아 보이는 시대에 살고 있다 … 서정시 쓰기가 힘든 시대라는 것은 역설적으로 서정시가 가장 절실히 요구되는 시대이기도 하다."('의심의 자발적 정지')

"문학인의 책무는 특정 이념에 대한 충실이 아니라 이념의 그물을 빠져나가는 홀대받는 진실에 대한 경의를 유지하는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내 삶의 소롯길에서')

정작 유교수는 책 서문에서 "칠판을 등지고 서서 혹은 백지를 앞에 놓고, 서툰 생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도 어언 쉰해가 가까워진다. 예나 이제나 막막한 생각이 들기는 매일반"이라며 겸손해한다.

이상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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