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 2년반 明滅한 人士 많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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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의 집권전반기 2년6개월.그동안 많은 인사들이 명멸했다.
정부쪽을 보면 이홍구(李洪九)총리,홍재형(洪在馨)경제부총리,권영해(權寧海)안기부장,주돈식(朱燉植)문체부장관,이인제(李仁濟)경기도지사등이 굴곡은 있었으나 비교적 요직을 지켜온 인물들이다. 오인환(吳隣煥)공보처장관은 초대각료중 유일하게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
반면 공직에서 물러나 본업으로 돌아갔거나 손을 놓고 있는 이들이 많다.
감사원장으로 YS(金泳三대통령)개혁의 상징처럼 됐던 이회창(李會昌)씨는 총리까지 올랐으나 YS와 충돌,도중하차했다.그는 변호사로 활동중이다.
경제부총리로서 新경제를 지휘했던 이경식(李經植).정재석(丁渽錫)씨도 중간에 정부를 떠났다.李씨는 무역협회상임고문이고 신병으로 물러난 丁씨는 자택에서 요양중.
한완상(韓完相)통일부총리는 초반의 의욕과는 달리 구설수에 오르내리다 10개월만에 자리를 떴다.그는 한국방송통신대학총장으로재직중이다.
북핵(北核)문제를 잘못 처리했다고 내내 시달렸던 한승주(韓昇洲)前외무장관은 고려대교수로 되돌아갔다.
보훈처장에서 국방장관으로 발탁됐던 이병태(李炳台)씨도 씁쓸하게 밀려나 미국체류중이다.
우루과이라운드에서 쌀 수입문제로 땀을 흘렸던 허신행(許信行)前농림수산부장관은 한국소비자보호원 원장이다.
뒤를 이었던 김양배(金良培)씨는 특별한 직업이 없다.
이회창씨와 함께 「개혁감사원」을 이끌었던 황영하(黃榮夏)前총무처장관은 15대총선출마(파주)를 저울질하고 있다.
개혁사정을 담당했던 김두희(金斗喜)前법무.박종철(朴鍾喆)前검찰총장은 변호사 개업도 하지않고 있다.
여느 정권에서나 비슷한 경우지만 유난히 섭섭하게 자리를 떠난사람들이 잦고 많은 형편이다.때문에 박관용(朴寬用)前청와대비서실장이 「마포포럼」이라는 친목단체를 만들어 전직 장.차관 90여명을 달래고 있다.
최소한 「딴맘」은 먹어서는 곤란하다는 얘기지만 천용택(千容宅)前비상기획위원장 같은 이는 김대중(金大中)씨의 국민회의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마포포럼 회장은 이경식前부총리,간사는 이충길(李忠吉)前보훈처장이다. 청와대도 부침과 변동이 심했다.전반기의 중심인물이었던박관용씨는 정치특보로 한발 물러나 15대총선 출마(부산 동래을)를 준비중이다.수석들은 대체로 계속 중용되고 있다.
초대비서실의 박재윤(朴在潤)경제수석은 통상산업부장관,이의근(李義根)행정수석은 민선 경북지사,이경재(李敬在)공보수석은 공보처차관으로 옮겼다.
최근 입각설이 나도는 김영수(金榮秀)민정수석을 비롯,홍인길(洪仁吉)총무.김석우(金錫友)의전,김기수(金基洙)수행실장등이 출범당시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洪수석은 15대총선 출마 예정.金의전은 차관으로 승진했다.「문민경호실장」으로 평가받던 박상범(朴相範)씨는 한단계 올라 평통사무총장으로 옮겨갔다.민정비서실은 비서관중에서 인물을 많이 배출했다.
보선에서 금배지를 단 박종웅(朴鍾雄)의원,김혁규(金爀圭)경남지사,김무성(金武星)내무차관등이 있다.반면 이충범(李忠範)사정비서관이 불명예스럽게 퇴진하기도 했다.
비서실출신으로 가장 마음이 무거운 사람은 정종욱(鄭鍾旭)前외교안보수석과 색깔시비를 일으킨 김정남(金正男)前교문수석이다.두사람은 지금 아무런 역할이 없다.
특히 외무부본부대사로 나간 鄭前수석은 재임시의 유감을 털어놓곤 한다는 얘기다.
출범당시 정책수석 내정단계에서 중도하차한 전병민(田炳旼)씨는낙심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우울하기는 안기부장.통일부총리를 지내다 지방선거연기 문건으로 물러난 김덕(金悳)씨도 마찬가지다.
그는 교수로 돌아갈 수도 없다.
안기부에는 김기섭(金杞燮)운영차장.조만후(曺萬厚)법률특보.남주홍(南柱洪)보좌관등이 건재하고 있다.
〈金 璡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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